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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과 기획

세계 종교 탐구 <15> 신(神)을 이용한 지배 방법에 대하여

BY.천부교

지난 3월 9일, 우리나라에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라를 대표할 국가의 원수를 선출한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권한과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서 이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어떨까? 자신들의 지도자가 신 내지는 신의 대리인이라고 믿던 고대에서는 ‘신권정치(神權政治)’가 이루어졌다.

신권정치란 통치자가 신 또는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되어, 절대적인 권력으로써 사람들을 지배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런데 이 신권정치는 비단 고대에만 행해진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이번『세계종교탐구』에서는 고대를 비롯, 중세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을 이용한 지배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 강력한 지배의 수단, 신(神)

<자료1> 신전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의 사원 3D 복원도
제정일치 사회였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신을 모시는 신전이 생활과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신전과 그곳의 사제들은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출처: https://www.renderhub.com/johnathang/iraq-sumerian-city-ziggurat-temple)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제정일치 사회로, 종교와 정치가 통합된 사회였다. 이 시대의 생활상은 다음과 같았다.

“메소포타미아인의 생활과 사회에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은 신전이었다.<자료1> 신전은 도시와 시민을 책임지는 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신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신전은 많은 일꾼을 고용하여 시민의 일상생활을 주도했다. 신전은 사제들이 운영했으며, 세금과 헌금으로 거둬들인 막대한 부를 관리했다. 신도들은 축복과 악령에 대한 보호를 부탁하는 대가로 기도와 제물을 바쳤다. 많은 사람들이 퇴마사와 예언자를 존경하면서 예언과 조언을 구했고, 꿈의 계시를 알려주는 신탁도 인기가 있었다.”

신을 모시는 신전과 그곳의 사제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사제들은 퇴마나 축복, 예언, 계시를 하는 등 신의 능력을 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들이 신과 연결돼 있다고 믿게 했다.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통치자들의 결정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순순히 순종하게 만드는 지배 효과를 가져왔다.

<자료2> 우루카기나 법이 새겨진 원뿔형 토판
서기전 2350년경, 인류 최초의 세금 감면 및 사회 개혁이 일어났다. 수메르의 도시 라가쉬의 왕 우루카기나는 개혁안의 전문에 자신의 왕권은 라가쉬의 신 닌기르수가 부여했으며, 이 법안은 신이 그에게 준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라 명시했다. (출처: 루브르 박물관)
<자료3> 함무라비 법전 상단의 부조
서기전 1750년경,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는 함무라비 법전에 서문과 함께 부조를 새겨넣었다. 함무라비(왼쪽)가 바빌론의 최고신 마르둑 또는 태양과 정의의 신 샤마쉬에게 왕권을 받는 모습이다. (출처: 루브르 박물관)

신을 내세우는 지배 방법은 법의 제정에도 사용되었다. 메소포타미아는 법들도 종교적 바탕 위에 제정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법은 전문, 본문, 결문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기전 2350년 제정된 우루카기나 법을 비롯하여 모든 법의 전문에는 신이 왕에게 왕권을 주었으며, 신들의 의지로 입법되었음을 명시한다.<자료2,3> 중세 유럽 절대주의 시대에 대두됐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시원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것이다. 다음은 서기전 1930년경 제정된 리피트-이쉬타르 법의 전문이다.<자료4>

<자료4> 리피트-이쉬타르 법의 전문이 새겨진 점토판
서기전 1930년경, 수메의 도시 이신의 리피트-이쉬타르왕은 법전의 서문에 수메르의 최고신 안과 엔릴이 자신을 왕으로 세웠고, 그가 나라에 정의를 세우고 복리를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 법을 제정함을 명시했다. (출처: 루브르 박물관)

“… 안 신과 엔릴 신이 리피트-이쉬타르를 그 나라의 왕자로 불렀고, 지혜로운 목자인 리피트-이쉬타르의 이름이 엔릴 신에 의해 선포되었다. 그는 그 나라에서 정의를 세우고, 정의를 호소하는 아우성을 제거하고, 적의와 무장의 폭력을 몰아내고, 수메르와 아카드 나라에 복리를 가져오도록 했다” 이와 같이 인간이 아닌 신을 내세우면 백성을 손쉽게 통제하고, 지배 질서를 바꾸려는 시도나 위협을 차단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신을 이용한 지배 방법은 이밖에도 다양했다. 당시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축제인 신년제를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겼는데, 축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행해졌다.

“대규모 종교축제인 신년제는 11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침례 등 각종 종교의식이 거행되었고, 그들의 신이 저승에 갇혔던 고난을 기념했다. 제사장이 기도하면 합창단은 찬미시를 노래했다. 사제는 군중 앞에서 세상의 창조 이야기를 음송했고, 왕은 여신 이난나를 상징하는 여사제와 결혼 의식을 거행하며 위대한 풍요신의 역할을 재연했다.”

신년제는 단순히 축제의 의미가 아니라, 국가의 보호자이자 부양자로서 왕의 지위를 굳건히 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연극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들은 율법, 서사시, 시, 기도문, 전례문 등을 저술하고, 국가가 후원하는 정성스럽고 감동스런 예배 의식을 집전함으로써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 신권정치의 수단, 종교 경전

메소포타미아 유역 서쪽에 위치한 가나안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의 영향으로 다신교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자신들의 민족신 외에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곤 했다. 그런데 서기전 7~6세기 이스라엘 종교의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압박을 받다 결국 멸망하고, 급기야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생활했던 바빌론 유수 시기를 겪는다. 이 시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강력한 신권정치를 통해 나라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그들은 경전을 집필해 이스라엘인 가운데 일부만 믿던 유목족의 신인 야훼를 유일신으로 승격시켰다. 이전까지 저승이나 부활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 이후로 부활, 천사, 천국과 지옥, 심판 등의 개념을 도입했고, 그저 축복만 주던 야훼 신을 백성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더욱 강력한 신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들의 경전에서 야훼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신으로 묘사된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신의 존재는 마치 일거수일투족이 CCTV에 찍히고 있는 것처럼 백성들이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유용한 통치 수단이 되었다. 야훼는 모세로 하여금 여러 율법을 인간에게 전해준다. 율법은 할례, 성관계, 질병, 월경, 산모, 음식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개인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했다. 다음은 율법의 한 예시로, 레위기 15장 월경에 관한 율법이다.

‘하느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중략) 여인이 피를 흘리는데, 그것이 월경일 경우에는 7일간 부정하다. 그 여인에게 닿은 사람은 저녁때가 되어야 부정을 벗는다. 그 여인이 불결한 기간 중에 누웠던 잠자리는 부정하다. 그 여인이 걸터앉았던 자리도 부정하다. 그 여인의 잠자리에 닿은 사람은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해야 한다. (중략) 그 여인이 하혈이 멎어 깨끗하게 되면 7일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에야 정하게 된다. 8일째 되는 날 그 여인은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잡아 사제에게 갖다 드려야 한다. 사제는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또 한 마리는 번제물로 삼아 드려야 한다. 이렇게 하여 사제는 야훼 앞에서 그 여인이 하혈로 부정탄 것을 속해준다. ’

율법에 의하면, 백성들은 부정함을 정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제사장을 통해 속죄례를 받아야했다. 바쳐진 제물은 의식 후 제사장이 차지했으므로 이러한 율법으로 제사장은 권력과 부를 모두 거머쥘 수 있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사제들이 퇴마, 제사 등을 하며 부와 권력을 유지해오던 방법과 유사하다.<자료5>

그들의 경전은 율법을 제시할 때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같이 신의 명령임을 첫 문장에 명시하며 시작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 “하느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와 같은 형식으로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말과 글, 곧 지배의 이념을 넣어 백성들이 신적 권위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또 신의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저주와 같은 처벌을 내려, 백성들이 신을 두려워하게 하여 복종하도록 했는데, 이는 곧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경전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이었다.

약소국가였던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패배는 곧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지배 수단인 경전에서 전쟁에 관한 내용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한 예시로, 그들의 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의 명령을 정성껏 지키고, 그에게 충성하면, 주께서 이 모든 민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이다. 너희의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다 너희의 소유가 될 것이다”
– 신명기 11장 22절~24절

신의 명령을 잘 지키면 전쟁의 승리와 땅을 얻을 수 있다는 경전의 메시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더 철저히 지키게 하고, 병사들에게는 사기를 북돋고 전쟁의 승리를 기대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이스라엘의 전쟁 이념은 약소국가의 방어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과 유럽 국가들의 종교가 되고난 이후, 이러한 전쟁 이념은 십자군 전쟁, 식민지를 확장하는 제국주의 이념으로 채택되어,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공격적, 전투적 이념으로 활용되었다.

▣ 신이 원하신 전쟁, 십자군 전쟁

<자료6> 1095년 클레르몽 교회 회의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교회 회의에서 십자군을 소집하는 연설을 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자료7> 우르바누스 2세의 동상
우르바누스 2세는 다음과 같이 십자군을 모집하는 연설을 했다. “저주 받은 민족, 신을 부인하는 민족이 그리스도교인들의 땅을 무력으로 침공해 온갖 약탈을 자행했노라.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서 부여하신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분명히 약속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중세 유럽에도 신권정치를 이용한 대표적 사례가 있다. 로마제국은 지배자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이라는 절대적 권력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1095년부터 약 200년간 일어난 십자군 전쟁이다. 많은 학자들은 가톨릭 교황이 1054년 갈라진 동서 교회를 재통합하고, 자신이 그 수장이 될 것을 기대하며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고 얘기한다. 이에 십자군 전쟁은 교황의 권력을 찾기 위한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클레르몽 교회 회의에서 성스러운 전쟁에 참여할 것을 격정적으로 호소했다.<자료6,7>

“저주 받은 민족, 신을 부인하는 민족이 그리스도교인들의 땅을 무력으로 침공해 온갖 약탈을 자행했노라.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서 부여하신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분명히 약속한다.”

연설을 마치자 군중들은 감동했고 “Deus vult(신이 원하신다)”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슴속 깊숙이서 우러나오는 신앙심으로 그들은 성전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이로써 십자군 병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원정이 시작되었다.

십자군은 종교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력과 약탈을 자행했다. 같은 그리스도교여도 로마 가톨릭교회가 아니면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병사들은 여러 마을로 쳐들어와 주민들을 고문하고 아기들을 쇠꼬챙이에 꿰어 구워 죽이고, 유대인들을 회당으로 몰아넣은 후 불을 질렀다. 예루살렘에서는 무슬림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러, 발목까지 잠기는 피의 개울을 걸어다니는 지경의 끔찍한 학살이 있었다. 십자군 병사들은 온 도시를 뛰어다니며 금, 은, 말, 노새 들을 닥치는 대로 빼앗았으며 귀중품으로 가득 찬 집들을 약탈했다. 신이 원하신다는 대의명분 아래 행해진 일들이다.<자료8,9>

First Crusade: Taking of Jerusalem by the Crusaders, 15 July 1099. Godfrey of Bouillon ( or Godefroi - Godefroy de Bouillon) giving thanks to God in the presence of Peter the Hermit after the capture of the city. Painting by Emile Signol (1804-1892), 1847. 3,24 x 5,57 m. Castle Museum, Versailles, France (Photo by Leemage/Corbis via Getty Images)

그런데 십자군을 소집했던 우르바누스 2세의 논리는 병사 소집을 위해 그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또 십자군 병사들의 광기 어린 잔악 행위도 개인의 도덕성 문제만이 아니었다. 신의 뜻대로 살육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그들의 논리, 적을 모조리 전멸시키고 닥치는 대로 전리품을 취하던 그들의 행동은 경전의 가르침대로 절실히 신의 뜻을 따른 결과물이었다. 십자군의 경전인 구약 성경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내용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료10> 모세 앞에 모인 이스라엘 민족
출애굽기 32장의 한 장면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돌아오는 동안 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사람들을 야훼의 명령으로 처벌하는 장면이다. “모세는 진지 어귀에 서서, 야훼의 편에 설 사람은 다 나서라고 외치자 레위 후손들이 다 모여들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명하신다. 모두들 허리에 칼을 차고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닥치는 대로 찔러 죽여라. 레위 후손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하였다. 그 날 백성 중에 맞아 죽은 자가 삼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 모세가 일렀다. 오늘 너희가 자기 아들과 동기마저 희생시켜가며 야훼께 충성을 다하였으니, 오늘 너희 위에 복이 내릴 것이다.” (출처: 영화『십계명』캡쳐)

“모세는 진지 어귀에 서서, 야훼의 편에 설 사람은 다 나서라고 외치자 레위 후손들이 다 모여들었다.<자료10>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명하신다. 모두들 허리에 칼을 차고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닥치는 대로 찔러 죽여라. 레위 후손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하였다. 그 날 백성 중에 맞아 죽은 자가 삼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 모세가 일렀다. 오늘 너희가 자기 아들과 동기마저 희생시켜가며 야훼께 충성을 다하였으니, 오늘 너희 위에 복이 내릴 것이다.”
– 출애굽기 32장 26~29절

“너희 하느님 여호와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너희 하느님 여호와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 숨 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 신명기 20장 13절~17절

이러한 십자군의 정신은 이후에 일어난 종교 전쟁들에도 이어졌다. 가톨릭과 개신교 간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3년, 한 용병대장은 메모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겼다.

“내가 남자 416명, 여자 928명, 미성년자 56명을 죽인 건 사실이다. 전투 중에 죽인 남자는 포함하지 않았다. 그밖에도 약 500채의 집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으며, 젊은 처자 800명을 강간했다. 그럼에도 나는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가 심판의 불길을 영원히 피할 거라고 믿는다. 구세주이신 나의 주님을 멀리한 적이 결코 없었고, 하느님의 말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을 시발점으로 유럽 종교 전쟁의 불이 지펴졌다. 후스 전쟁, 기사 전쟁, 위그노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 전쟁 등 중세부터 근대까지 유럽의 역사는 종교전쟁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그런데 종교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들에는 한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종교적인 문제에 한정되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정치와 종교가 엉켜 정치적·영토적 야심과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당연한 사실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신권정치의 지배력은 강력했고, 오래전부터 종교는 정치의 명분과 도구로 활용되었다. 십자군의 만행을 폭로한 책 「십자군 이야기」를 읽은 한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원래 전쟁을 할 성스러운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전쟁을 할 세속적 ‘필요’가 있을 뿐”이다.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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