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26> 핼러윈의 기원을 찾아서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 세계 각지에서는 ‘핼러윈’이라는 기념일을 즐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핼러윈의 풍경은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축제의 모습이다.
“곳곳에는 호박으로 만든 ‘잭 오 랜턴(Jack O’Lantern)’을 장식해 놓고, 사람들은 마녀나 유령, 괴물과 같은 괴상한 분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한다.
아이들은 “Trick or Treat!(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칠거야!)”을 외치며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 초콜릿 등을 나눠준다.”<사진1,2>
핼러윈에는 왜 이런 특이한 풍습이 생겼을까? 그 기원은 종교적 풍습에서 비롯된다.
◆ 핼러윈은 종교적 풍습
핼러윈은 얼핏 젊은이들의 유흥을 위한 재미있는 축제로 보인다. 하지만 핼러윈은 종교적 풍습으로 시작된 종교적 의미를 가진 축제다. 유사한 예로 크리스마스가 일반인들에겐 선물을 주고받으며 특유의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날 정도로 여겨지지만, 본래는 그리스도교에서 그들의 신인 예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정해 기념하는 종교적인 날인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핼러윈에는 어떤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핼러윈은 망자를 기리거나 악령에서 보호하려는 종교적 의미를 가진 풍습에서 유래되었다. 핼러윈의 유래로 주로 언급되는 것은 켈트족의 ‘사우인(Samhain)’과 가톨릭교의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이다. 사우인은 10월 31일에 시작하여 11월 1일에 끝나는 켈트족의 축제다. 1년을
10개월로 계산하던 고대 켈트족은 한해의 끝인 10월 31일 밤이 되면 사후 세계와의 경계가 옅어지며 망자의 영혼과 함께 악령이 세상에 나타날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망자의 영혼이 평온하기를 기원하며 음식과 술을 차리는 풍습이 생겼고, 악령들에게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악령이 사람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생겼다. 이러한 점들이 사우인을 핼러윈의 기원 중 하나로 지목받게 했다.
그런데 켈트족의 사우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망자를 기리는 기념일이 존재해왔다. 우리나라에도 조상을 기리며 차례상을 올리는 추석이 있으며, 중국에는 중원절(中元節), 일본에는 오본(お盆), 베트남엔 뗏쭝투(Tet Trung thu), 볼리비아에는 해골의 날(Fiestas de las Ñatitas)<사진3>, 멕시코에는 망자의 날(El Día de los Muertos)<사진4>, 네팔에는 가이자트라(GaiJatra), 필리핀에는 죽은 자의 날(Araw Ng Mga Patay), 로마에는 페랄리아(Feralia)등이 있다. 이 기념일들도 저승문이 열려 돌아가신 조상을 포함해 모든 혼령과 귀신이 이승에 나타난다고 믿는다든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바친다든가, 등이나 케이크
같은 선물을 교환하는 등 사우인과 유사한 사상과 풍습을 보인다. 또한 동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의 기념일은 주로 10월 31일에서 11월 2일 사이에 행해져 축제 기간까지 유사하다. 게다가 43년경 로마가 켈트족 땅을 정복한 후에는 로마의 추수 축제인 포모나 축제와 망자를 기리는 축제인 페랄리아가
사우인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결합했기 때문에 핼러윈의 유래로서 사우인만을 지목하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있다.
◆ 핼러윈은 가톨릭 축일의 전야제
UCLA의 중세 및 르네상스 전문 연구 교수인 헨리 A. 켈리는 핼러윈이 사우인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것은 사실 잘못된 추적이며 그 기원은 그리스도교의 축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얘기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바티칸 뉴스를 비롯한 다수의 가톨릭 언론들은 핼러윈이 가톨릭 전통에 확실한 뿌리를 두고 있다고 단언했다.
핼러윈(Halloween)의 어원부터 그 유래가 명확하다.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은 중세 영어로 All Hallows’ Day라 했다. 10월 31일은 모든 성인의 날의 전야로 All Hallows’ Eve라 불렸고, 이를 다시 Eve의 축약형인 E’en을 활용해 All Hallow e’en. 이것을 더 줄여 Halloween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모든 성인의 날은 가톨릭이 지정하는 성인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특정 축일이 없어 일일이 챙기지 못한 성인들까지 한꺼번에 기리는 날이다.<참고자료1>
609년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로마의 모든 신을 모셨던 판테온 신전을 성모 마리아와 모든 순교자를 기리는 가톨릭 성소로 개조하며 5월 13일 ‘모든 성인의 날’이 처음 제정되었다. 731년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바티칸 베드로 성당 안에 성인들의 유해를 안치한 경당을 마련했는데, 이 경당을 모든 성인들을 위해 봉헌하면서 현재와 같이 11월 1일로 날짜를 변경하였다. 이후 835년 교황 그레고리오 4세가 모든 성인의 날을 로마 가톨릭교회 영향력 밑에 있던 유럽 전체가 지키도록 하면서 공식적으로 전 교회에 보급되었다.<사진5> 이 축일을 더 성대히 지내기 위하여 전날에 전야제를 신설한 것이 핼러윈이다.
중세 유럽의 가톨릭 신도들은 모든 성인의 날 전날 유령, 뱀파이어, 마녀, 좀비 등의 의상을 입고 집집을 다니면서 작은 선물을 요구하거나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대가로 음식을 요구했다. 그들은 속을 파낸 순무로 만든 등을 가지고 다녔는데, 그 안에서 타고 있는 촛불은 연옥에 갇힌 영혼을 상징했다고 한다. 핼러윈이 미국에 전해졌을 때는 이 등을 비교적 흔했던 호박으로 만들었다. 특히 생전에 악행을 많이 저질러 천국과 지옥 양쪽에서 거부당해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된 구두쇠 ‘잭’의 영혼이 들고 다녔다는 호박 등불 ‘잭 오 랜턴’은 지금까지 핼러윈의 마스코트가 되었다.<사진6>
초기 가톨릭교회에서는 모든 성인의 날 전야 즉, 핼러윈에 성인들의 뼈와 유물을 전시하는 방법으로 축일을 기념했다. 하지만 모든 성인의 날이 11월 1일로 지정되면서부터 가톨릭은 사우인을 비롯해 동일한 날에 행해지던 여러 나라의 망자 기념일을 모든 성인의 날로 대체하거나 혼합하여 흡수했다. 601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민간의 믿음이나 풍습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가톨릭 교리로 변환시키라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 만약 사람들이 나무를 숭배한다면 그 나무를 잘라버리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축성한 뒤 계속 모시게 하라는 것이다.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일종의 포용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12월 25일을 가톨릭의 축일로 지정했던 것이 있다. 12월 25일은 미트라, 아티스, 호루스, 디오니소스, 크리슈나 등 여러 기존 종교 신들의 생일이자 여러 민족이 지내던 동지 축제일이었고, 이를 가톨릭의 축일로 받아들이며 많은 이교도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핼러윈도 타민족의 풍습에서 가톨릭과 어울리며 대중들에 인기 있는 요소들을 받아들여 효과적으로 가톨릭을 전파할 수 있게 했다. 가톨릭이 전 세계로 확산함에 따라 각 지역 망자의 날들을 모든 성인의 날 전야제로 흡수하며 핼러윈 축제도 함께 확산되었다.
◆ 핼러윈에 대한 현대 가톨릭의 태도
핼러윈은 현재 세계인들이 즐기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핼러윈 시즌이 다가오면 가톨릭교회와 언론들이 핼러윈의 종교적 의미를 잊지 않게 하고 자신들의 문화임을 확고히 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미국 오클라호마 털사의 데이비드 콘델라 주교는 신도들에게 핼러윈을 기념하기 위한 진정한 정신을 찾아주고자 2018년 ‘핼러윈 기념에 관한 비망록’을 발행했다. 콘델라 주교는 핼러윈 분장을 하는 관습은 신앙심이 깊은 것이라며 존경하는 성인으로 분장함으로써 평신도들이 살아있는 성인이 되게 하며, 이것은 예수를 본받는 실제 사례가 된다고 했다. 또 사람들은 핼러윈의 음침하거나 끔찍한 분장을 보고 이를 악이나 죽음을 숭배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오인하기도 하나, 가톨릭에선 경건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사진7> 해골과 낫과 같이 눈에 보이는 죽음의 상징은 우리의 죽음을 상기시켜주며 심판의 거룩함을 일깨워준다는 것이었다.
2019년 미국 알쿠인 가톨릭 문화 연구소의 마르셀 브라운 박사는 핼러윈의 가톨릭적 뿌리에 대한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핼러윈 축제는 성대한 경축일 전날에 기념되는 가톨릭의 주요 축제 중 하나”라고 했다.
같은 해, 미국의 종교 매거진 Religion Unplugged는 핼러윈의 가톨릭 기원은 종종 세속 언론에 간과된다며 이교인 켈트족의 축제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성인의 날이 이미 보편적인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으니 핼러윈의 전파뿐 아니라 기원도 가톨릭이라는 주장을 했다.
2016년 로마가톨릭 미디어 온라인 간행물 사이트 Aleteia에서는 핼러윈이 상업적으로 발달해 가톨릭적 의미가 없어보이지만 사실 깊은 가톨릭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 보도했다. 영화 007 시리즈 ‘007 스펙터’에 나오는 멕시코의 망자의 날 및 핼러윈 축제 장면에서 군중들이 해골바가지를 쓰고 다니고, 곳곳에 화려하게 십자가 장식을 해둔 것을 보면 그들의 주장대로 핼러윈이 가톨릭의 축제임을 알게 해준다.<사진8>
그런데 2022년 11월 3일에는 핼러윈이 가톨릭의 축제라던 지금까지의 태도들과 다소 대조적인 내용의 사건이 가톨릭 전문 통신사인 CNA(Catholic News Agency)에 보도되었다. 지난 10월 31일 핼러윈 밤에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 교구 캘바리 공동묘지에 누군가가 낙서테러를 했다고 한다. 로버트 배런 주교는 악마적이고 저속한 낙서로 묘지가 훼손됐다고 전했다. 두 개의 무덤 묘표, 예수의 조각상, 그리고 십자가에 파란색과 갈색의 낙서가 칠해져 있었는데,<사진9> 낙서에는 ‘우리가 믿는 사탄’이라는 단어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 핼러윈에 사탄을 믿는 자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기사에 의하면 청소 및 수리가 가능한 수준의 범행이었는데, 이를 보도자료화하여 CNA를 시작으로 가톨릭 언론들에서 유포한 이유는 무엇일까?
11월 17일 CNA에서는 캘바리 공동묘지의 복구 소식을 알렸다. 현재까지 범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크게 훼손됐다던 공동묘지는 이내 복구 완료되어 11일 재축성식을 가졌다고 한다. 12일 배런 주교는 자신의 유튜브에 재축성식을 행하는 모습을 올렸는데, 영상에 따르면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 시편 50편 낭독, 오염된 장소에 성수 뿌리기를 하며 정화했다고 한다.<사진10>
지난달 30일,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가 이태원 압사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사진11>
“Preghiamo il Signore Risorto per quanti – soprattutto giovani –sono morti questa notte a Seul, per le tragiche conseguenze di un’improvvisa calca della folla (지난밤 서울에서 순식간에 군중이 몰려들어 발생한 비극적 결과로 인해 사망한 이들, 특히 젊은이들을 위하여,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합시다.)”
설레는 마음으로 즐기러 나간 크리스마스 축제에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기념일을 유래시킨 종교에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분위기에 이끌려 외래 종교 축제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한창 꽃 피울 나이였을 이태원 희생자들은 책임 소재로서 인구 과밀만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겠다는 그 종교의 기도로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참고자료1>
만성절 & 핼러윈 & 만령절
■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만성절, All Saints’ Day)
모든 성인의 날은 매년 11월 1일, 말 그대로 모든 성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축일이 따로 없는 성인들을 기리는 날이다. ‘만성절’이라고도 부르며, 한국 가톨릭의 공식 명칭은 ‘모든 성일 대축일’이다. 가톨릭에서는 각 성인마다 축일을 부여하는데, 대개 그 성인이 죽은 날이다. 성인이 죽은 날은 곧 그 성인이 천상에서 태어난 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톨릭이 지정하는 성인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중복되는 축일이 너무 많아 모든 성인에게 축일을 부여할 수 없게 되었는데, 축일이 있는 성인은 본인의 축일에 기려지기 때문에 축일이 따로 없는 성인들을 한꺼번에 모든 성인의 날에 기리게 되었다.
■ 10월 31일 핼러윈 (만성절 전야, All Hallows’ Eve)
핼러윈은 만성절 전야제로서 ‘만성제’라고도 불린다. 핼러윈은 매년 10월 31일 열리는데, 이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과 마찬가지로 타종교의 축일을 자신들의 축일로 흡수·대체하기 위해, 타종교의 축일과 같은 날짜로 정한 것이다. 실제로 가톨릭이 확산되며 많은 나라의 전통 망자의 날 의식이 가톨릭의 의식으로 대체되거나 혼합된 채 행해지고 있다. 만성절 전야에는 묘지에 찾아가 촛불을 켜 놓는 관습이 있으며, 중세 유럽의 가톨릭 신도들은 유령, 뱀파이어 등의 의상을 입고 집집을 다니면서 작은 선물을 요구하거나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대가로 음식을 요구했다고 한다.
■ 11월 2일 모든 영혼의 날 (만령절, All Souls’ Day)
모든 영혼의 날은 매년 11월 2일, 성인이 아닌 모든 죽은 이들을 기리는 날이다. ‘만령절’, ‘위령의 날’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가톨릭의 공식 명칭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다. 아직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영혼들이 빨리 정화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들을 위한 위령 미사를 지내는 날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에는 죽은 이를 기리는 관습이 있어, 기일에 무덤에 모여 죽은 이를 추도하며 헌주를 하고 음복을 나누는 것은 대중적인 일이었다. 고대 로마에는 죽음을 기리는 행사도 있었는데, 2월 13일부터 22일 사이에 가족 중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는 위령제(Parentalia)를 지냈고,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가족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며 죽은 이를 추모하는 행사인 페랄리아(Feralia)를 행했다. 4세기, 이러한 관습을 받아들여 로마교회는 베드로를 추모하기 시작했고, 이 추모 관습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해 수용하면서 오늘날 위령의 날이 되었다.
2018년 위령의 날,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 프란치스코는 강론을 통해 “오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뿌리를 상기시켜주는 기억의 날입니다. 또한 오늘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떠올리게 해주는 희망의 날입니다.” 라고 했다. 강론 후 교황은 오랜 전통에 따라 베드로 성당 지하 묘지에 들러, 초대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인 전직 교황들을 위해 기도했다. 베드로 성당 지하 묘지에는 약 100여 명의 교황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