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실천하고 노력하는 일꾼들이 되세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대하는 자세
이만제단에 다닐 때 하나님께서 특별 권사 10명과 구역별 전도사를 뽑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겨우 30대라 전도사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안찰하실 때 하나님께서 “전도하라” 하시니 감사히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구역은 을지로였는데, 하루 11~12집을 심방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30대 여자가 폐병으로 사망을 해 처음으로 생명물을 가지고 시신을 전도관식으로 씻기게 되었습니다. 굳은 시신이 노긋노긋해지고, 향취가 나며, 얼굴에 이슬이 맺히고, 뺨부터 이마로 살아나는 핏줄을 보면서 자신이 생겼습니다. 이토록 확실한 생명물이 있으니 어디든지 전도할 수 있겠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1962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뒤 간장 공장장을 맡으라 하셨을 때는 “못 해낼 것 같다”고 했다가 무척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에는 소사신앙촌과 각 지방으로 돌아다니시며 예배 인도 하시느라 바쁘셨지만 항상 삽을 들고 본을 보이셨습니다. 더구나 덕소신앙촌의 공장 지대 아파트를 건설하실 때는 사람들이 힘들어할까봐 물을 길어 직접 시멘트 배합을 하시고 바르셨습니다. 남에게 시키실 수도 있으신데, 직접 본이 되어 하시는 걸 보니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김도삼 승사/기장신앙촌
직분을 받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
저희 제단에 계시던 전도사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고 새로 부임하신 전도사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왠지 전에 계셨던 분보다 못한 것 같아 속으로 ‘이번 전도사님은 은혜가 없는가 보다’라고 얕잡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날부터 기쁘고 즐거웠던 마음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 해도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도 한결같이 나가는데 그저 냉랭하기만 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밤마다 잠을 자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한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앉았다 누웠다 하기를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날도 새벽예배에 나가 기도를 드리는데 저도 모르게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겉모습만 보고 업신여기며 순종하지 못한 저의 교만한 마음에 대한 뉘우침의 눈물이었습니다. 여느 때 남들이 뜨거운 눈물을 말할 때 저는 눈물이면 눈물이지 뜨거운 눈물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었지만, 이날 제가 흘린 눈물이 바로 뜨거운 눈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음 문을 열라고 말씀하신 그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전도사님을 따라 심방을 다녔습니다.
김동찬 전직관장/기장신앙촌
직분만으로는 구원 얻을 수 없어
할머니와 함께 이만제단 예배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설교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직분이 있다고 하여 다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받고 죄와 상관이 없는 자격을 갖추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썩고 흉측하게 되지만 시신에 은혜가 임하면 살았을 때보다 더욱 아름답게 핀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날 예배를 마친 후 할머니는 오랫동안 장로교회의 장례를 맡아 일하셨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수의를 입힐 때 보면 아무리 잘 믿은 목사나 장로도 뻣뻣하게 굳어 있고 무섭게 눈을 부릅뜨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체는 방이 흥건하도록 송장 물이 흘러서 나막신을 신고 들어가 수의를 입혔으며 그 지독한 악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너무도 섬뜩하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그들이 다 천국에 가는 줄만 알았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구나. 내가 지금껏 잘못 알았구나” 하고 탄식을 하셨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 다녔던 장로교회에 완전히 발길을 끊고 이만제단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셨습니다.
장정자 권사/소사교회
발행일 : 2024-03-24 발행호수 : 2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