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4> 종교 속의 여신(女神) 이야기
인류 최초의 여성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신이 창조한 이브’를 떠올리는 것은 성경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남녀를 창조해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에 포함되어 세 종교에서 모두 신의 말씀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을 보면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이후에 이브를 만들었다는 반면에 창세기 1장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했다고 기록되어 모순이 있는데, 이에 답을 제시한 것이 유대교였다.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신이 아담과 동시에 만든 여성은 ‘릴리트’이며 릴리트가 아담의 명령을 거부하고 떠나버렸기 때문에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아담을 버린 릴리트는 바다의 악마 아시모다이의 정부(情婦)가 되어 날마다 수백 마리의 괴물을 낳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릴리트의 모습이 유대교보다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수메르 종교의 ‘릴리투’ 여신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수메르에서 여자 악령이었던 릴리투는 유대교에서도 괴물을 낳는 악령으로 여겨졌다. 릴리투뿐 아니라 수메르의 여신들은 이름만 바뀐 채 그 역할과 이미지 그대로 다른 종교에 흡수됐는데 이는 수메르 문명이 지녔던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메르 이후 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그 종교 속에 묘사된 여신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따라서 종교 속의 여신을 살펴보는 것은 시대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된다.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수메르부터 시작된 종교 속의 여신 이야기를 추적해 본다.
지금부터 7,000년 전에 존재한 수메르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여신은 ‘이난나 여신’이었다.<자료1> 강력한 성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미와 사랑의 여신 이난나는 기원전 19세기에 성립한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이슈타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기원전 12세기 세워진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로 불리며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다. 또 로마에서는 ‘비너스’ 여신이 되어 수많은 신전과 미술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이난나 여신의 성적인 에너지를 숭배했기 때문에 그것을 찬양하는 여신 축제에서 집단 난교를 벌였는데, 이는 도시의 모든 여성이 신전에서 매춘을 하는 ‘신전 매춘’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신전 매춘은 수메르를 넘어 여러 지역에 전파되었을 뿐 아니라 그 지역의 종교 행위이자 전통으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도 신전 매춘이 성행했는데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작 ‘역사’에서 신전 매춘을 이렇게 묘사했다. “바빌로니아의 모든 여자들은 일생에 한 번은 여신의 신전 앞뜰에 앉아 지나가는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야 했다. 신전 매춘은 신분 고하를 막론한 종교적 의무였기 때문에 여인들은 이 의무를 다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매춘을 할 때 남자는 여신의 이름을 외치며 동전을 던져 주었는데 적은 돈이라도 한 번 던지면 신성한 것이 되기 때문에 거절하거나 돌려줄 수 없었다.”<자료2>
그 후 기원전 13세기 무렵 가나안(현재 팔레스타인 서부 지역)에서도 신전 매춘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때 가나안에 정착한 유대인들도 신전 매춘에 참여하게 되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매춘에 참여하는 일은 근절되지 않았고 결국 여신 숭배로 개종하는 유대인들도 있었다.
그리스 키프로스 섬에 위치한 도시 파포스는 여신을 열렬히 숭배하며 모든 여성이 신전 매춘에 참여하는 곳이었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당시 신전 매춘으로 임신한 여자들이 전부 처녀로 간주되었다는 점이다. 이 매춘으로 태어난 아이들 또한 ‘동정녀 출산’이라고 하여 처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여겨졌는데 신전 매춘이 성행하면서 동정녀 출산 또한 빈번하게 이루어졌다.<자료3,4> 초기 로마 가톨릭교회가 마리아의 동정녀 출산을 주장했을 때 세상의 비웃음을 샀던 이유는 이를 믿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당시에 너무나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원 후 4세기 가톨릭교회가 로마의 공인을 받게 되면서 마리아의 위치 또한 일대 반전을 맞게 되었다. 그 전까지 예수 탄생에 대해 로마 군인 판테라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설과 마리아가 오빠와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설 등이 분분했으나 로마의 공인 이후로 마리아는 처녀로서 구세주 ‘예수’를 낳았다는 성모의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되었다.<자료5>
신의 어머니인 ‘성모’가 신을 낳고 양육한다는 개념은 수메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수메르에서는 닌후르사그라는 여신이 신을 낳는 역할을 했으며, 이집트에서는 여신 이시스가
‘인간의 구원자’인 아들 호루스를 낳은 성모였다. <자료6>
마리아와 동일한 시대에 숭배를 받았던 여신으로는 아티스의 어머니 키벨레 여신이 있었다. ‘위대한 어머니’라는 뜻의 마그나 마테르라고 불렸던 키벨레는 기원후 2세기 무렵 최고 번성기를 맞아 바티칸을 비롯한 로마 곳곳에 키벨레 신전이 들어서게 되었다.
키벨레 여신의 아들 아티스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신의 화신으로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는 등 예수의 모습과 유사하면서도 예수가 태어나기 200년 전부터 숭배를 받아 온 신이었는데, 가톨릭교회는 로마의 공인을 받은 후로 아티스를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티스뿐 아니라 미트라나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등의 신들도 이단으로 탄압을 받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구하는 구원자로서 숭배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미트라 교는 피로써 죄를 씻는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교주 미트라에게 바쳐진 비문을 보면 “그대는 영원히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를 구원했도다.”라고 적혀 있었다.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는 세상의 죄를 대속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신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12월 25일에 탄생해 병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했으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고 한다. 미트라와 오시리스, 디오니소스는 철저한 탄압으로 그를 믿는 신도들이 사라져 갔지만 피를 통해 죄를 씻는다는 교리, 십자가의 죽음, 부활 등의 이야기는 그 주인공만 예수로 바뀐 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한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신도들은 포도주를 먹음으로써 신의 피를 마시고 신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포도주에 밀의 맥각 같은 환각물을 첨가해 신도들이 황홀경에 빠져 성적인 광란을 일으키는 것이 디오니소스 숭배의 특징이었다.
이같은 디오니소스 숭배는 철저히 말살당했지만 포도주를 마시며 신의 피를 마시는 의식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초기 로마교회에서 행해졌던 ‘사랑의 축제’는 남녀가 평화의 키스를 주고 받으며 집단적인 황홀경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디오니소스 축제와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로마교회는 해마다 1월이면 ‘바보들의 미사’를 열어 외설적인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했는데 15세기 프랑스 참사회(가톨릭 사제들의 모임)가 남긴 기록을 보면 이때 집단적인 난교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자료7> 기록에 따르면 참사회에서는 바보 미사에서 성교를 할 때 교회 밖에서 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적인 교합을 종교적인 행위로 여기는 것은 그 뿌리가 고대 수메르로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종교들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유대교 전승에 흡수되었던 ‘릴리투’ 여신도 수메르 문명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원전은 기원전 22세기에 기록된 ‘길가메쉬 서사시’이다. 여기서 릴리투는 나무에 살고 있는 악령으로 묘사되었고 이 악령의 이미지가 유대교 전승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신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역대 왕의 재임 기간, 영웅의 모험담, 그리고 대홍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종교를 총망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보다 1400년을 앞서 기록된 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는 머나먼 고대의 이야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다음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다루도록 한다.
점토판의 보는 수메르의 문명 사회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해서 현재까지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 흔적을 살펴보면 수메르인의 삶과 현대인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 중 수메르인의 학교 생활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료를 한 가지 소개한다.
■ 수메르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 학교
수메르의 역사는 지금부터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수메르가 이룩한 문명은 현대와 비교해도 다를 바 없는 고도의 문명이었다. 그중 문화와 학문의 중심이었던 학교는 특히 발달한 수메르의 문명 사회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수메르의 학교에 대한 내용이 담긴 점토판은 우루크에서 발굴되었다. 학생들의 실습 내용이 담긴 점토판 수백 점이었는데 이 ‘습자본’ 점토판들을 보면 당시 수메르 학교의 교수 방법과 교과 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수메르 학교의 목적은 ‘전문적인 직업인’을 양산하는 것으로 졸업생 대부분은 신전과 왕궁의 필경사(서기관)가 되었다. 일부는 학자가 되어 수업과 연구, 저술 활동을 했다. 교과과정이 계속 늘어나면서 학교는 직업 학교에서 벗어나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메르의 인문학자와 과학자들은 신학,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지리학, 수학, 문법, 언어 등 을 연구했다.
수메르 학교의 장은 ‘학교 아버지’라고도 불렸고, 학생은 ‘학교 아들’, 조교수는 ‘큰 형제’라고 불렸다. 선생님들은 칭찬으로 학생들을 격려했으나, 학생들의 잘못과 결함을 바로잡기 위해 체벌도 하며 엄격하게 가르쳤다.
■ ‘최초의 학교’와 ‘최초의 촌지’
1949년 전문 학술지인 <아메리칸 오리엔탈 소사이어티>에 수메르 점토판에 기록된 최초의 학교 생활 내용이 발표되었다. 수메르 소년이 학교 생활에 관해 쓴 에세이가 이때 해독된 것이었다.
에세이의 저자인 수메르 소년은 잠에서 깨자 점심 도시락을 싸달라고 어머니를 재촉한다. 그는 학교에 지각해 ‘선생님에게 벌받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지각 외에도 경솔한 언행 등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선생님과 조수들에게 회초리로 얻어맞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사태로 선생님이 주인공 소년에게 “필기가 엉망이군”이라고 말하며 매질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모든 상황을 견디지 못한 소년은 그의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선물로 기분을 바꾸자고 그의 아버지에게 제안한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새 옷을 입히며 선물과 반지를 준다. 이런 환대에 선생님은 “너는 너의 친구들 중에는 우두머리가 될 것이며, 학생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너는 학교 활동을 잘해왔으므로, 지식인이 될 것이다.”라며 제자를 찬란하게 격려한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학교 생활’이자 ‘최초의 촌지’다.
인류 최초의 여성은 누구일까?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따라 신이 창조한 최초의 여성은 ‘이브’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여성은 이브가 아니다. 성경을 보며 확인해 보자.
■ 최초의 여성은 이브가 아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여성은 동일인물이 아니다.
<창세기 1장: 아담과 동시에 만들어진 여성>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세기 2장 : 아담 이후 만들어진 이브 >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 최초의 여성은 누구인가?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아담과 동시에 창조된 최초의 여성은 릴리트이다. 아담은 릴리트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했으나, 릴리트는 둘 다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복종할 이유가 없다며 아담을 떠나 버린다.
■ 최초의 여성에게도 기원이 있다?
아담을 버린 릴리트는 악마의 정부가 되어 날마다 수백 마리의 괴물을 낳는 존재가 되었다. 성경 창세기에서 신이 창조한 최초의 여성이 결국 괴물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이러한 릴리트의 모습은 수메르 문명에서 “릴리투”로 불렸던 여신의 모습과 유사하다. 릴리투뿐 아니라 수메르의 여신들은 이름만 바뀐 채 그 역할과 이미지 그대로 다른 종교에 흡수되었다.
예수 출생의 진실은?
2세기 그리스 철학자 켈수스는 그의 저서 『참된 가르침』(178년경)에 서 “예수는 로마 군인 판테라와 마리아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사상가였던 오리겐이 『켈수스에 반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반박한 바 있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설은 예수와 마리아를 숭배하는 교리의 기반이 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이 각인되었는데,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수태고지’를 표현한 미술 작품들이다. 수태고지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찾아와 예수를 임신할 것임을 알리는 장면으로, 이는 수세기 동안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한편 지난 2002년, 예수의 탄생이 과학적인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영국 BBC 방송이 ‘예수의 동정녀 출생설’에 관한 새로운 분석 기사를 방영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유대 사학자들이 치밀한 고증과 조사를 거친 내용을 방영했는데, 학자들은 동정녀 출산설이 기독교가 지배적 종교로 자리를 굳히는 과정에서 확정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사실은 마리아가 당시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군 장교 ‘판테라’에 의해 성폭행을 당해 예수를 출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신약 성서에는 마리아가 임신 초기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폭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보인다고 학자들은 설명했다. 즉 마리아가 황급히 사촌지간인 엘리사벳을 찾아가 자신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호소하면서 자신을 ‘여종의 비천함’에 비유했는데 (누가복음 1: 39, 48) 이는 당시에 강간을 당한 여자가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기획기사 속 책 소개 (출처: 샤루크 후사인, 『여신』, 도서출판 창해, 2005년)
<여신> 샤루크 후사인 著
이 책은 오늘날까지 여러 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여신들을 소개한다. 학자들은 과거 200년 동안 발견된 고고학적 사실들을 통해 고대 여신의 의미를 재발견하였다.
창조를 뜻하는 ‘어머니 여신’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강의 여신, 바다의 여신, 전쟁의 여신 등 여신의 다양한 모습을 다루었다. 이 책을 통해 고대의 여신들은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여신의 이미지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키벨레 여신 (책 본문 36p)
『최초의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키벨레를 제국의 최고신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아내 리비아 두르실라를 지상에 내려온 키벨레의 화신으로 여겼다. 키벨레는 ‘위대한 어머니’라는 뜻의 마그나 마테르, ‘모든 신들의 어머니’라는 뜻의 대모신으로 불렸다. 그녀의 사제 중 한 사람인 몬타누스가 2세기경 키벨레의 아들 아티스와 예수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을 근거로 그리스도교의 한 종파를 창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배척당했다. 4세기에 이르러 몬타누스 추종자들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여신축제 (책 본문 40-41p)
『수메르에서 열렸던 여신축제는 10세기경까지 하란(오늘날 터키)에서 열렸는데, 어머니가 주관하는 가운데 죽었다가 재생하는 아들을 찬양하는 봄 축제는 아마 유럽 및 근동 지역의 여신숭배에 대한 전통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제일 것이다. 여신을 찬양하는 대부분의 축제에서는 여신과 더불의 그녀의 아들에게도 경배를 바친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 모두로부터 찬양을 받으며, 대지를 풍요로운 기운으로 채우려는 목적으로 종종 난교를 벌이기도 했다. … 로마 가톨릭을 믿는 여러지역에서는 성모 마
리아의 행진으로 형태만 바뀐 채 이교도 축제가 아직도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