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믿습니까?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X-mas를 맞아 일곱 살 어린이에게 날린 질문이 화제에 올랐다. 산타의 위치를 묻는 동심에게 “아직도 산타를 믿니?”라고 직격탄을 날리고는 “일곱 살이면 그만 믿을 만하지 않니?”라며 쐐기를 박았다. 트럼프 특유의 스트롱맨 기질로는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수의에 새겨진 예수의 고통을 떠올려야 합니다.”
2015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에 전시된 수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수의를 보기 위해 수백만 명의 관람객들이 토리노를 찾았다.
토리노 수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그 시체를 감쌌다는 세마포 천이다.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담겨 있는 중요한 성물”이라고 한다. 그 천에 얼굴부터 전신이 찍혀 있는데 예수가 부활할 때 ‘강력한 방사 에너지’가 나와서 형상이 남은 것이라며 토리노 수의야말로 예수 부활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수의를 네거티브 이미지로 보면 유럽형 미남 스타일의 남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토리노 수의가 공개된 그해 인터넷에는 전혀 다른 예수의 얼굴이 화제가 됐다. 영국 법의학자 리처드 니브가 이스라엘에서 발굴된 셈족의 두개골을 토대로 컴퓨터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통해 재현한 얼굴로, BBC 다큐멘터리 ‘신의 얼굴’을 통해 알려졌다. 실제 복원된 예수의 모습은 짧은 곱슬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근육질 남성이었다. 토리노 수의는 물론 어떤 가톨릭 명화에서도 보지 못한 예수의 얼굴이었다.
토리노 수의가 진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제작 연대가 밝혀져야 했다. 1987년 토리노의 대주교는 애리조나, 옥스퍼드, 취리히의 실험실에 연대 측정을 요청했다. 수의 표본은 각 실험실에서 표준 절차에 따라 오염물질을 제거한 후 그 방사성 내용물을 가속질량분석기로 측정했고 세 실험실에서 거의 똑같은 측정치가 나왔다. 서기 1260년에서 1390년, 즉 예수가 죽은 지 1,000년이 훨씬 지난 후에 토리노 수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최근 ANSA 등 이탈리아 언론은 토리노 수의에 찍힌 핏자국이 가짜라고 보도했다. 지난 7월 영국과 이탈리아의 법의학자와 화학자들이 인체 모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실제로 피 흘리는 시체를 감싸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형성될 수 없는 핏자국이 토리노 수의에 찍혀 있다는 것이었다. 토리노 수의와 같은 핏자국이 찍히려면 인위적으로 자국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미국의 고고학자 T. 더글라스 프라이스는 그의 책 <고고학의 방법과 실재>에서 이렇게 말했다. “토리노 수의가 진짜라고 믿는 것은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제 가짜를 밝히는 과학적인 증거를 가진 세상은 진짜라고 고집하는 단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아직도 그것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