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은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도시로, 생산‧교육‧종교 활동을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신앙인들이 함께 땀 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본지에서는 ‘윤 기자의 리얼 신앙촌 체험’을 통해 신앙촌의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신앙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주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쨍하던 10월 15일, 알차게 여물어 고개를 한껏 숙인 벼를 수확하러 인턴 기자와 함께 논으로 향했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논길을 쭉 따라가니 한일영농에서 근무하는 최효임 씨(실제 기자가 부른 호칭은 효임 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언니는 반갑게 맞아주며 오늘 할 일에 대해 설명해줬다. 콤바인(곡식을 베는 일과 탈곡하는 일을 한꺼번에 하는 농기계)이 벼를 수확해주므로, 우리는 콤바인이 잘 진입할 수 있도록 논의 네 귀퉁이만 베면 된다고 했다.
고된 노동을 예상하고 다음날 몸살까지 각오하고 왔던 터라, 생각보다 적은 일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다.
야무지게 벼를 휘어잡은 윤기자. 역시 어설프다.
# 추수, 힘든 작업을 묵묵한 보람으로
난생 처음 낫을 잡고 의욕적으로 벼를 벴다. 벼를 잡고 낫에 힘을 주어 탁탁탁 베어보니 어설프지만 잘리긴 했다. 나름 잘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보다 못한 한일영농 직원분(실제 기자가 부른 호칭은 유리 언니)가 베는 법을 알려줬다. 왼손으로 벼를 야무지게 휘어잡고, 줄기 아래에서 위로 한 번에 낫질 해보라고 했다. 가르쳐준 대로 하니 훨씬 수월했다. 이 정도 난이도라면 콤바인 없이도 모든 벼를 다 벨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확히 30분이 지나자 체력이 빠르게 바닥났다. 논은 큰 바둑판 식으로 이루어졌고, 그 칸 하나의 귀퉁이가 생각보다 넓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으로 넘어가면서 계속 이온 음료를 찾는 나를 발견했다. 음료는 금세 동이 낫다.
콤바인이 밟고 지나간 자리의 벼를 일일이 베는 일도 빠른 체력 소모에 한 몫 했다. 계속 허리를 굽히고 낫질만 했더니 거북목을 넘어서 기역(ㄱ)자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매우 힘들었다. 신앙신보 인턴이 된 첫 날부터 벼 베기에 투입된 유나에게 조금 미안해짐과 동시에 그동안 이 힘든 작업을 묵묵히 해왔을 한일영농 직원들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각 교회로 보내질 쌀.
# 교회로 가는 추수쌀이 바로 여기서
그러던 중 “삐— 삐—” 어디선가 알람음이 들렸다. 콤바인의 저장 탱크가 가득 찼다는 소리였다. 어디선가 거대한 포대자루(일명 톤백)를 실은 트럭이 달려와 콤바인 옆에 섰다. 콤바인에 연결된 파이프에서 낟알로 분리된 곡식들이 포댓자루 안으로 기분 좋게 쏟아졌다. 어느새 가득 찬 톤백과 함께 우리는 트럭을 타고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에 도착해보니 미리 거둬들인 알곡들이 수 십개의 톤백에 담겨있었다. 추수한 알곡은 당일 건조해야만, 보관하기에도 좋고 썩지 않는다고 했다. 톤백을 지게차로 들어올려 알곡을 건조기에 쏟아 붇고 12시간을 돌리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런 식으로 잘 건조된 쌀들이 도정을 거쳐 20kg씩 예쁘게 포장돼 전국의 천부교회로 보내지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매해 가을마다 받았던 추수감사절 쌀이 이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다.
우렁이 농법의 주인공이자 제초의 달인.
# 벼 다루기를 아이처럼, 애정으로 돌봐
저녁에 낫질을 알려줬던 유리 언니를 만나 레스토랑에서 후식을 먹으며 벼농사에 관해 이것 저것 물었다.
벼 농사의 시작은 모판에 씨를 뿌려 모종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 새싹같이 자라난 모종을 땅에 심는 것이 모내기였다. 5월
중순에 모내기를 시작해서 하지(夏至)전에 끝내야 좋은 쌀이 자라난단다.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했는데, 제초 전문가 우렁이가 물속의 풀을 먹기 때문에 농약없이 친환경 쌀을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우렁이 얘기를 들으며 벼 줄기에 붙어있는 빨간 덩어리가 우렁이 알인지 모르고 징그러운 게 있다며 놀라 비명을 질렀던 과거가 떠올라 잠시 겸연쩍어졌다.
모를 심고 나서는 그야말로 애정으로 돌본다고 한다. 중간중간 잡초도 제거해주고, 장마와 태풍을 대비해 정성껏 물관리를 한다. 비가 오면 논에 물이 차지 않고 흘러갈 수 있도록 도랑을 깊게 파주고, 비가 안 와서 가물면 얼른 논둑을 막아 물을 가둔다. 물관리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한다고. 이런 부단한 수고와 노력 덕분인지 올해 기록적인 폭우와 태풍 속에서도 한일 영농에서 관리하는 논밭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미처 몰랐다. 매해 교회로 배달된 쌀을 먹으면서도, 단 한 번도 영농 직원들의 수고를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게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보내주신 쌀로 따뜻한 밥을 지어 아이들과 함께 주먹밥, 김치볶음밥, 도시락 등을 만들어 부족함 없이 먹었던 추억들을 유리 언니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던 언니는 눈이 동그래졌다. 쌀을 보내기만 했지, 교인들이 어떻게 먹었는지 자세히 듣는 건 처음이라 했다. 언니도 고맙다고 했다. 다음에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말하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건조기 속으로 쏟아지는 알곡들.
에필로그
헤어진 후에도 계속 떠올랐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목까지 덮는 과수원 모자를 쓰고 작물마다 묵묵히 비료를 주는, 비가 쏟아지자 누구보다 빠르게 장화를 신고 논으로 달려가 물길을 트는, 낫질로 하루 종일 굽은 허리를 이따금씩 쭉 펴고 흐르는 땀을 닦는, 깔끔하게 포장된 채 교회로 배송되는 쌀자루들을 보며 미소 지었을 한일영농 직원들을 이제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