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28> 술을 먹는 종교 의식에 대하여
종교가 탄생한 배경에는 신을 영접하게 해주는 영험한 음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음료를 마시면 쾌감과 환상, 환각, 현기증을 동반하는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고대의 사람들은 이를 ‘신을 접했다’거나 ‘신이 되었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음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술’이다.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 성분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마취성 약물로, 향정신성 작용을 해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고대나 현대 어느 사회에서든 신과 접촉하는 의식을 치를 때는 포도주, 맥주 등의 알코올성 음료가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술은 언제부터 인류의 종교 의식과 접하게 되었을까? 이번 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술과 종교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술이 사용된 여러 종교의 의식들에 대해 알아본다.
▣ 술을 발견하고 신을 만나다.
과숙한 포도나 딸기를 먹으면 술맛이 나는 경우가 있다. 과일 표면에 있던 효모에 의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적당한 수분과 당질이 있다면 술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 쉽다. 때문에 술은 발명되었다고 하지 않고 발견되었다고 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이나 빗물이 고인 벌집 등은 발효가 일어나기 좋은 조건이었고, 사람들은 거품이 보글거리며 달달한 향을 풍기는 액체를 맛보고 그 오묘한 매력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술을 접하게 된 시기는 까마득히 먼 옛날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물증만 해도 술은 1만 2천 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 1만 2천 년 전이면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었다던 구석기 시대, 마지막 빙하기의 끝자락에 해당한다. 그 시대에 이미 술을 담근 그릇이나 지하 양조장이 있던 것으로 보아 더 일찍이 술을 제조해 먹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술이 선사하는 특별한 기분은 사람들을 신의 세계로 이끌었다. 샤먼들이 접신할 때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취기에 동반되는 흥분 상태와 비슷했고, 인간은 술을 먹음으로써 보다 쉽게 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대의 학자들은 술이 정신에 미치는 작용을 ‘탈속(脫俗)’으로 간주했다. 이성과 자제력이라는 세속적인 고리를 끊고 신과 더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종교 시설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1만 2천 년 전 지어진 종교 시설인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 신전에서는 돌로 만든 커다란 대야가 몇 개 발견되었는데, 곡물을 담그고 으깨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옥살산칼슘이 검출되었다고 한다.<자료1> 이것은 괴베클리 테페에서 술을 제조했다는 증거로, 그 규모로 보아 여러 부족이 모여 다 함께 맥주를 마시는 연회를 벌였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선사 시대를 비롯하여 고대,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술을 먹는 종교 의식이 존재했다. 종교들은 어떤 식으로 술을 종교의식에 사용했을까?
▣ 술, 신과 소통하는 수단
사람들은 신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종교의식 중에 술을 마셨다. 예를 들어 고대 수메르 문명 사람들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할 때 반드시 맥주를 마셨다. 중동 지역에 위치한 수메르는 기후가 건조하여 정기적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때 종교 의식으로서 신전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사제와 성행위를 했다.<자료2> 성행위를 하는 것은 농사에 도움을 주는 비가 신이 흥분해 흘리는 땀방울이라 여겼기 때문인데, 이때 맥주를 마셔야 신을 더 잘 영접하고, 신과 더 잘 소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술을 마시며 성행위를 하는 종교 축제가 있었다. 이른바 ‘만취 축제’라 불리는 축제였다.<자료3> 만취 축제는 하토르 여신을 기념하고 맥주의 기적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축하하기 위해 열리는 축제였다. 축제는 해질녘에 시작된다. 여성들은 화장을 하고 머리에 화관을 쓴 채, 모두가 몰약을 바르고 향유로 몸을 문질렀으며 사방에 꽃을 뿌려 축제 장소에서 천국 같은 향기가 나도록 해 축제를 준비한다. 하토르 여신에게 헌주를 한 후 사제와 무희들은 음주무를 추고,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과실주와 맥주를 들여오며 축제의 진정한 재미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신성하게 만취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러려면 완전히 취한 상태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는 종교적인 열정을 다해 꿀꺽꿀꺽 술을 들이킨다. 사람들이 고주망태가 되었을 때 사제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에게 술을 먹이고 그에게 음식을 먹이며 그를 섹스로 이끌라”. 사람들은 이내 집단 섹스를 한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 축제에는 70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밤의 막바지가 되면 무의식이 판을 치며 사람들은 곯아 떨어진다. 다음날 새벽,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들이 북을 치며 사람들을 깨우는데, 이 순간이 축제의 절정이다. 술이 덜 깬 새벽의 몽롱한 상태에서는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신과의 영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신과 교감하는 순간에 여신에게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만취 축제의 증거를 처음 발굴한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진은 만취 축제를 하는 궁극적인 의도는 ‘신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술은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신을 만나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 술, 가장 보편화된 마약
술이 주는 취기는 쾌감과 환상, 환각, 현기증을 동반한다. 인간의 신경을 일시적으로 흥분시키거나 마비시키는 향정신성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신의 모습을 보고 신과 소통하려했다.
힌두교에는 초월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영적인 음료인 ‘소마’가 있다. 소마는 소마초(草) 즙에 물과 우유를 섞어 발효시킨 술이었다. 사람들은 이 술을 마시면 신비로운 힘이 생겨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여겼다. 소마의 원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려져있지 않은데, 문헌에 의하면 소마초는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으며 산 속에서 발견되고, 꽃이 피지 않고 잎이 없으며 심지어 뿌리도 없다고 묘사되어 있어 ‘에페드라’나 ‘광대버섯’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자료4> 모두 환각효과가 있는 물질들이다. 소마주는 흥분성이 강한 환각작용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은 이 황홀한 도취감을 신비한 영력이라 여겼던 것이다.
힌두교에 소마가 있다면 조로아스터교에는 ‘하오마’라는 신성한 술이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에 따르면, 음식과 하오마라고 불리는 환각성 음료를 바치는 것이 신을 영접하는 의식이었다. 하오마는 하오마풀을 짜서 만든 술이라 전해지지만 실제 하오마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힌두교의 소마와 이름만 다른 동일한 술로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에는 부활의 신이자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디오니소스를 위한 의식에서 가장 중요했다.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의식의 하나로 포도주를 흠뻑 마시는 광란의 축제인 디오니소스 축제를 벌였는데, 이때 포도주에 밀의 맥각 같은 환각물을 넣어 축제 참가자들이 황홀경에 이를 수 있게 도왔다. 황홀경에 이르러야 신을 영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각 물질을 넣지 않아도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만으로 신을 영접하게 하는 효과는 충분하다. 와인 고고학의 최고권위자 패트릭 E. 맥거번 교수는 “알코올은 가장 보편적인 마취성 약물”이라고 얘기한다. 술은 가장 구하기 쉽고 일상에 널리 퍼져있는 마약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 포도주, 부활하는 신의 피
포도나무와 포도주는 수많은 종교에서 주요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말라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을 내고 잎이 풍성하게 자라는 포도나무는 부활을 상징했고, 선혈과도 같은 포도주의 붉은 색은 부활하는 신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포도주는 부활의 신이자 포도주의 신인 ‘오시리스의 피’를 상징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오시리스의 피인 포도주를 숭배하며 부활과 풍요를 기원했는데, 이는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의 색이 철을 함유한 황토물 때문에 붉은 빛을 띠었고, 범람 후 땅이 비옥해져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을 보고 오시리스의 붉은 피가 부활과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자료5> 부활하는 포도주의 신은 후대에 전파되어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각각 디오니소스와 바쿠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포도주는 각 나라에서 자신들의 신의 피로 여겨졌다.
그리스에서는 포도주를 디오니소스 신의 피라고 생각해, 부활의 힘을 지닌 디오니소스의 피를 마시면 인간이 건강해지고, 포도가 와인으로 재생되는 소생의 힘을 얻어 풍작이 확실해진다고 믿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디오니소스 축제를 열어 포도주를 마시며 디오니소스를 숭배했다.
로마에는 디오니소스와 동일한 신인 바쿠스가 있다. 바쿠스를 숭배하는 축제도 디오니소스 축제와 유사했다.<자료6> 바쿠스 축제는 밤중에 비밀리에 열렸다. 먼저 바쿠스 신에게 헌주한 후 포도주 연회를 벌였는데, 축제가 절정에 이르면 사람들은 술에 취해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제물로 바쳐진 짐승, 또는 어린아이를 산 채로 뜯어 먹고 그 피를 마셨다고 한다. 이는 바쿠스 신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상징적 행위로서, 일종의 신과의 합일이라는 뜻이었다. 뿐만 아니라 축제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과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난잡한 집단 성행위를 했는데, 이러한 광란의 제전에는 술이 주는 취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디오니소스 축제와 바쿠스 축제는 현재 사라졌지만 포도주를 마시며 신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 난잡한 집단 성행위 등을 하는 종교 의식들은 후대에 생겨난 종교들에서 명맥을 이어갔다.
▣ 신의 몸과 피를 먹는 현대 종교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포도주가 넘쳐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도와 포도주에 관한 내용만 443회에 달한다. 예를 들어 예수가 디오니소스처럼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다는 요한복음 2장의 일화가 유명하다. 어느 피로연에 간 예수가 그곳의 술이 동나자 약 120갤런(약 450L)이나 되는 물을 포도주로 바꿔 사람들에게 대접했다는 이야기다.
사도행전 2장에도 포도주가 언급된다. 사도행전 2장에 따르면 오순절날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모였는데, 성령이 강림해 방언을 했다고 한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방언을 해놓고 신기해하며 서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하고 물어보고 있었는데, 이를 보고 어떤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포도주에 잔뜩 취했군”이라며 조롱한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는 지금 시간이 아침 9시라는 이유로, 취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다.
실제로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포도주에 취하는 일이 많았으며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근거 중 하나로 음주 행위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일반인이 보기에 술꾼 집단인 해괴한 종파였지만 다른 종교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기에 경악할 정도는 아니었다고는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평판을 우려한 바울은 취하지 말라거나 더 이상 과음하지 말라는 편지를 계속해서 썼다고 한다.
포도주와 관련한 성경 내용 중 그 절정은 마태복음 26장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한 발언이다. 예수는 빵을 들어 축복하고 제자들에게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술잔을 들어 기도를 한 뒤 “받아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억하라.”라고 얘기하는데, 이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교조(敎條)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예수가 직접 시범을 보인 이 예식은 성찬식이란 이름으로 그리스도교에 자리 잡아 현재도 행해지고 있다. 성찬식이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며 예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는 의식이다.<자료7> 가톨릭교도들은 이를 상징적 의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성찬식은 신자가 신과 하나가 되는 사건이고, 빵과 포도주가 정말 예수의 몸과 피가 되는 예식이며, 포도주는 곧 예수의 실제 피로서 성혈(聖血)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가톨릭 신앙의 주춧돌이며, 논의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경건하고 뿌리 깊은 의식이다.
당시 일반인들 사이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이 피를 먹는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4세기 활동했던 그리스도교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찬식을 가리켜 “이성으로 탐구할 수 없는 신비”라고 했고,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12~13세기 신학자들은 “실체 변화”라는 개념을 발명한다. 빵과 포도주가 그 모습과 맛은 유지하되 신적 능력에 의해 예수의 몸과 피로 실체가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16세기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실체 변화 교리를 부인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라”라며 성명서에 단언하기까지 한다.
이탈리아 역사학자 피에트로 레돈디는 실체 변화 개념에 대해 “성찬식의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이성과 신앙이 내내 갈등을 빚어온 역사이다. 지동설이라는 천문학적 진실에 대한 반대는 이 문제에 비하면 짧고 주변적인 일화에 분명하다.”라고 의아함을 표현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는 실체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갈릴레오는 1623년 <시금사(Il Saggiatore)>라는 저서에서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원자 이론’을 설파했는데, 제일 중요한 대목은 물질이 다른 물질로 바뀔 때 원래의 특징들도 따라서 변한다는 설명이었다.<자료8> 이것은 가톨릭 신앙의 정수인 성찬식의 기적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이론이었다. 빵과 포도주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예수의 몸과 피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의견과 목소리로 어떤 것에 이름을 붙여 그것을 존재하게 만들 수 있다면, 부탁하건대 호의를 베풀어 내 집의 오래된 가재도구들에 ‘금’이라는 이름을 붙여 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그를 성찬식 교리를 위협한 자로 고발하지 못했다. 갈릴레오같이 저명한 과학자의 주장이 알려지면 교회의 신성(神性)에 논란이 일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교황청은 원자 이론이 아닌 지동설을 명목으로 재판을 열었다. 그리고 갈릴레오에게 지동설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원자 이론을 다시 언급하지 않으면 극형을 피하게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제안한다. 갈릴레오는 이를 받아들였고 가택연금으로 형을 축소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1세기에도 성찬식은 여전히 거룩히 행해지고 있다.<자료9,10> 이전에 과학이 종교재판을 받아 패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꾸준히 발달해왔다. 지금도 새로운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는 오늘날, 이제는 과학이 종교를 재판할 것이다. 무고하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어느 종교가 과학을 두려워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