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16>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에 대하여
지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義士)의 순국일이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의거(義擧)를 단행했고, 이듬해 3월
26일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살인’의 죄목으로 사형되었다. 다른 나라를 침탈하고 그 국민들을 학살한 침략국의 수장을 제거한 것이지만 일본 재판부는 의거가 아닌 살인 범죄로 판결한 것이다. 안 의사는 피의자 신문 당시
“이토 암살이 죄악이라 생각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 … 성서에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뿐이다.”
– 안중근 10회 신문조서 中<자료1>
안 의사에게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필요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의거로 안 의사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고, 자신이 믿던 가톨릭으로부터는 살인죄로 단죄되어 신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의 독실한 신자였던 그를 파문한 근거는 일본의 형법이 아닌 ‘신의 법’이었다. 성서라 불리우는 것에 살인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살인 금지를 비롯해 몇 가지 도덕 규범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도덕 규범과도 일치한다.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는 이 율법은 언제부터 존재했던 법일까? 안중근 의사를 비난할 만큼 이 율법을 중요시했던 종교는 이 율법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했을까?
이번『세계 종교 탐구』에서는 십계명의 유래와 실효성에 대해 알아본다.
▣ 계약,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다
법은 사회 구성원 간 약속에서 비롯된다. 약속의 증거로 기록이 필요했고, 문자가 발명되자 사람들은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300~4900년 전 고대 수메르의 계약서 토판들을 보면 주로 팔 것을 약속하고 판매금을 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자료2>
“이러이러한 물건으로 얼마의 금액을 판매자 아무개가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약 200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판매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만일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신의 단검으로 그는 처형될 것이다.” 또는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만일 판매자가 약속을 어기면 그의 입속에 죄악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입속에 나무못을 박아버릴 것이다.”와 같은 문구들이다. 신권(神權)정치 시대였던 고대에서, 신의 이름을 건 맹세는 계약의 구속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국가 사이에 체결했던 조약에서도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을 어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글로 기록했다. 일례로 지금으로부터 약 4450년 전 기록된 수메르의 ‘독수리 석비(石碑)’가 있다.<자료3> 이것는 수메르의 도성국가 라가쉬가 이웃국가 움마와의 국경분쟁에서 승리한 후, 양국 간 체결한 조약이다.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의 왕 엔릴(수메르의 최고신)의
목숨으로 맹세한다.
나(움마의 왕)는 닌기르수(라가쉬의 수호신)의
경작지를 임차한다.
나는 수로의 권한을 표명하지 않을 것이며
대대로 닌기르수의 경계지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며
수로와 운하의 경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며
경계비를 부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만일 그가 빌린 경작지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면
이는 조약을 어기는 것이다.
그가 맹세한 엔릴의 거대한 투망이
하늘에서 움마인들에게 덮어씌워질 것이다.”
이를 보면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이 가진 절대적 권위와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신의 이름을 내세워 약속의 권위와 정당성을 높이는 방법은 법의 제정에도 사용되었다.
▣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신의 법으로
수메르의 도덕규범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그들의 격언에서 알 수 있다. 격언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진리나 상식을 담고 있어, 당시의 생활상과 민족성을 이해하는 좋은 연구 자료가 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격언집의 원형은 지금으로부터 약 4600년 전 편찬된「슈루파크의 가르침」이다.<자료4>「슈루파크의 가르침」에서 슈루파크는 지혜롭고 유식한 사람으로, 그의 아들에게 지혜의 말을 가르쳐 준다.
“내가 가르치겠다. 주의하여 들어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 네 자신이 쓰러지는 것이다.
살인강도를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스스로 [이후 점토판 일부 파손]
남의 젊은 여자와 놀지 말라. 구설수가 커진다.
맹세를 하지 말라. 네 자신이 매인다.
말다툼을 일으키지 말라.
거짓을 불리지 말라 …”
– 4600년 전 기록된「슈루파크의 가르침」中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도둑질, 살인, 간음, 헛된 맹세, 말다툼,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500여 년 지나 수메르 최초의 법전으로 발전된다. 인류 최초의 법전이자 수메르 최초의 법전은 지금으로부터 4100년 전 제정된「우르남무 법전」이다.<자료5> 1~3조가
‘살인, 살인강도, 상해’, 6~8조가 ‘간음’, 13~14, 28조가 ‘거짓 증거’의 항목으로, 그 내용과 순서가 슈루파크의 가르침과 거의 같다.
우르남무 법전은 슈루파크의 가르침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더 발전된 형태를 갖췄다. 슈루파크의 가르침이 “~하지 말라”는 단순 명령이었다면, 우르남무 법전은 “~했으면 ~한다”는 처벌이 포함된 법규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또 슈루파크의 가르침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면 우르남무 법전은 신의 권능과 말로 확립한 법으로 발전했다. 이는 우르남무 법전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안과 엔릴(수메르의 최고신들)이
난나(달의 신)에게 우르의 왕권을 준 후에
그때에 그가 사랑하는 종 우르남무에게
정의와 진리에 따라 [이후 점토판 일부 파손]
(중략)
그때에 힘센 젊은이, 우르의 왕,
나 우르남무가 나의 왕 난나의 권능과
우투(태양과 정의의 신)의 진리의 말로
나라의 정의를 확립했다.” <자료6>
인간이 지은 법이 아닌 신의 법이란 설정은 법에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했고, 더 높은 강제력을 갖추게 했다.
▣ 메소포타미아 법에서 이스라엘 법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널리, 오래 시행된 법은 지금으로부터 3750년 전 제정된「함무라비 법전」이다.<자료7> 법과 더불어「슈루파크의 가르침」도 여러 격언들을 모아 전집의 형태로 재정비되며 계속 전해져왔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오랫동안 성행했던 함무라비 법전과 슈루파크의 가르침은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편찬 완료된 이스라엘 민족들의 율법서에도 찾아볼 수 있다. 율법의 내용은 도덕법, 제사법, 시민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중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도덕법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시민법의 일부는 메소포타미아의 법들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평가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율법인 십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자료8,9>
1.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우상을 섬기지 말라.
3.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5.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9.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말라.
– 출애굽기 20장 3~17절
십계명에서 1~4항은 신에 대한 의무 조항, 5~10항은 인간 의 사회 규범을 다루고 있다. 1~4항은 유일신 신앙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그들만의 법이기 때문에 논외로 두고, 5~10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소개했던 슈루파크의 가르침과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으라”는 서두 후 “~하지 말라”는 경고를 연이어 나열하는 형식도 유사하다.
함무라비 법전도 십계명의 5~10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십계명 외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서와 평행을 이룬다고 표현될 정도로 유사한 항목이 많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경구로 널리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피해자가 당한 상해와 같은 형태로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196조) 사람이 사람의 눈을 멀게 했을 경우 그의 눈을 멀게 한다. (197조) 사람이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을 경우 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린다.” 같은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스라엘의 율법, 성경으로는 구약에도 나타난다.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 레위기 24장 19~21절
또한 신약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예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어라.”
– 마태복음 5장 38~39절
예로 든 신체 부위가 눈으로 시작해 이빨, 이빨 다음 뺨이 나온다. 이는 함무라비 법전의 조항 순서와 일치한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상해에 관한 조항은 눈으로 시작한다. 196~199조까지 눈에 관한 조항, 200~201조까지 이빨에 관한 조항, 202~205조까지 뺨을 때린 경우에 관한 조항이 연이어 나온다.
이를 두고 한 고대 근동 학자는 ‘이스라엘인들은 서기전 587년 바빌론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의 지적 문화유산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초기 이스라엘의 율법을 편찬했기 때문에, 신약성서에서 바빌로니아 문화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학자의 말처럼 율법서의 저자들이 바빌론에서 통용되던 법을 차용한 것인지, 성경에서처럼 실제로 신이 그러한 법을 준 것인지는, 사실 신만이 아는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경위로 법을 얻었든, 중요한 것은 신이 내린 율법도 고대의 통용됐던 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법은 당시 사회에 필요했던 법이라는 것이다.
▣ 십계명은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가?
살인하지 말라는 법은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이다. 하지만 법의 실효는 실제로 시행되고 있을 때에 나타난다. 십계명을 주요 율법으로 삼는 종교에서, 신의 뜻으로 제정되었던 율법은 신의 뜻으로 예외가 되기도 하고, 신의 뜻이면 범법했더라도 용서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095년, 로마 가톨릭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을 모집하는 연설<자료10>에서 ‘그리스도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이단자를 죽이는 것은 십계명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그리고는 이것이 그들의 신 그리스도의 명임을 밝혔다.
“그들(이단자)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으며 교회를 파괴하고 제국을 약탈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시라도 지체한다면, 하느님의 충성스런 신자들이 이 침략에 더 크게 희생될 것입니다. 기병이건 보병이건 부자건 빈민이건, 계급을 막론하고 그리스도교를 도와주러 가도록, 그래서 그 사악한 종족을 말살시킬 것을 간청합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것입니다.”
– 로마 가톨릭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연설 中
이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포함한 비그리스도교인들을 무참히 학살해도 종교적,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이듬해 출정한 십자군은 3년 뒤 예루살렘을 피의 강으로 만들며 사악한 종족 말살에 성공하였다.
죄악을 방관하면 더 큰 희생이 생기게 되니 전쟁을 일으키자는 우르바누스 2세의 주장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런데 1910년 한국에서, 일제의 죄악과 만행을 방관하지 않고 그 수장을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자, 로마 가톨릭은 환호가 아닌 비난을 쏟아부었고 그의 신자 자격을 박탈시켜 버린다.
안중근 의사에게 세례를 해주었던 빌렘 신부는 그의 범죄를 한탄했다. 1910년 중국의 신문『순천시보』3월 15~16일 자 2면에는 “빌렘 신부, 감옥에 가서 안중근을 지도하다”라는 기사가 3회에 걸쳐 실렸는데,<자료11> 그가 안 의사에게 했던 말과 행적들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안중근을 만난 빌렘 신부는 “이토 공작을 암살한 죄악은 하늘에 사무치므로 너를 참회하고 잘못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며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을 밝혔다. 또 그는 접견실에 성상을 가져와 배치하고 그 앞에 기도한 후, 빵 한 조각과 포도주 두 방울을 안중근에게 주며 “자네가 참회하면 신은 반드시 묻지 않고 비로소 죄를 씻을 수 있다. 그러나 이토 공작 같은 위인을 살해한 것은 죽어도 큰 죄를 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성찬의식을 거행하게 허락한 은혜가 하늘과 같다”며 일본에 감사를 돌렸다.
-『순천시보』3월 15~16일 자 2면 발췌 및 요약
목숨을 각오하고 의거를 단행했던 그에게 “너의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살인행위이며, 살인자인 너를 배려한 일본에 감사하도록 하라”며 이것을 그에게 주는 가르침이라 표현하던 빌렘 신부의 모습은 당시 로마 가톨릭 조선교구의 입장을 대변한다.
2000년 3월 1일 방영된 KBS1TV의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과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에서는, 1985년 명동성당 지하 자료실에서 발견된 당시 로마 가톨릭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의 일기와 조선교구 통신문을 근거로 안 의사와 천주교의 갈등을 파헤쳤다. 방송에는 당시 로마 가톨릭 조선교구가 안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하고 교인 지위를 박탈했으며, 안 의사의 사촌 동생 안명근이 고해성사했던 항일운동 계획을 일본에 밀고하여 그를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구속되게 했으며, 그 대가로 소송에 패했던 가톨릭 땅의 소유권을 요구해 명동성당 진입로 두 곳을 개통시켰고(『뮈텔 주교 일기』에 의하면, 1911년 1월 11일 뮈텔은 자신이 일본의 경무총감 아카시를 찾아가 안명근 건을 밀고했으며, ‘이 기회’를 이용해 ‘현재 명동성당 진입로가 막혀 있는데, 이를 되찾기 위한 소송에서 두 번이나 패소했고 상고심도 기각되어 복구될 희망이 없는 상황이지만 모든 방법을 동원해 권리를 되찾고자 함’을 알렸고, 이에 아카시가 즉석에서 두 통로를 개통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다고 적었다.), 신사참배가 성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영 전 KBS가 발행한 이 프로의 보도자료를 보면, 제작진은 “당시 로마 가톨릭 조선교구가 교세 확장만을 위해 안중근을 매도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거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1945년, 그들과 거래했던 일본은 패망했고 우리나라는 광복을 되찾았으며, 안중근 의사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 의사가 순국한 후 83년 만인 1993년, 한국 천주교는 용서받지 못할 살인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며, 그의 신자 자격을 복권했다. 순국 후 100년 만인 2010년에는 처음으로 안 의사를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고, 이듬해인 2011년부터는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시복(諡福)을 추진 중이다. 복자는 가톨릭교회에서 성인 전 단계로, 로마 가톨릭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교를 위해 예루살렘 탈환을 계획한 우르바누스 2세 같은 자들을 복자로 추대한다. 그들에게 있어 복자와 살인범의 차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