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12> 유일신(唯一神)을 만든 과정에 대하여
지난해 12월 14일, 황량한 땅 위에 기린 6마리가 뒤엉킨 채 말라 죽어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자료1> 영국 가디언지는 이 사진을 실으며 “6마리의 죽은 기린들, 케냐 가뭄의 공포가 사진 한 장에 담겼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최근 케냐는 2011년 이후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목초지와 물이 사라져 가축은 말라 죽어 가고 농부들은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역 목축업자 아흐메드 이브라힘은 “구할 방법이 더 이상 없다.”, “하늘의 뜻”이라고 안타까워하며 “비가 오기를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천재지변은 인간에게 있어 언제나 불가항력적인 존재였다. 저항 불가한 거대한 자연의 힘은 예로부터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곤 했다. 실례로 자연에 의한 불가항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act of God’. 우리말로는 ‘신의 행위’이다. 이러한 인식의 시작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 수메르, 신들이 탄생하다
지금으로부터 7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 두 강 사이에 위치한 비옥한 땅에는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 문명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비약적인 속도로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럼에도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연재해였다. 태양에 농작물이 타거나 가뭄으로 말라 죽는가 하면, 거듭되는 홍수와 하천의 범람으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수메르 사람들은 일찍부터 자연계에 인간보다 위대한 어떤 힘이 있다고 믿었고, 자연계의 여러 요소들을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다신교가 생겨난 것이다.
많은 신들 사이에는 나름의 계층 질서가 있었고, 지위가 가장 높은 최고의 신이 존재했다. 수메르의 최고신은 하늘의 신 안(아누)이었다.(괄호 안은 바빌로니아 시대의 이름)그렇다고 그가 혼자서 세상을 다스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관장하고, 이 땅의 세상은 그의 두 아들, 대기의 신 엔릴(엘릴)과 물의 신 엔키(에아)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함께 다스리게 했다.
▣ 바빌론, 마르둑을 최고의 신으로 만들다
그런데 서기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 시대에 들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큰 신들의 서열을 뒤집고 한 신이 전지전능한 최고신으로 올라서게 된다. 바로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이다.<자료2>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 종교의 가르침은 그 파생 종교<자료9>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들의 대표적 파생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에서는 야훼라 불리던 신의 명칭을 각각 알라와 하느님으로 바꾸어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 ‘하느님은 한분이시요 다른 이가 없다’ 등으로 가르친다. 그들은 경전의 가르침대로 신실히 믿음을 실천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 이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라고 맹세해야만 입교할 수 있다. 이를 신앙고백이라 하는데, 신앙고백은 이슬람에서 천국에 가기 위해 행해야 할 5대 계율 중 가장 첫 번째 계율로 이슬람 사람들은 이를 삶의 근본이자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로 여긴다.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을 위해 실제로 다른 신을 믿는 종교를 세상에서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4세기 로마 시대부터이다. 313년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어 자유롭게 포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오직 기독교만을 로마 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선언함과 동시에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에 이교도 사원이 전면 폐쇄되거나 파괴되었고,<자료10>
이 시기를 기점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전통 종교를 비롯해 미트라교, 키벨레 종교, 디오니소스 종교 등 여러 기존 종교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신도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15~16세기에는 원주민들의 제국에 찾아가 이교도를 몰아내고 자신들의 신을 믿게 했다. 일례로 남미의 아즈텍 제국에 가서는 “당신들 아즈텍인들이 믿었던 신들은 모두 사악한 악마고, 오직 가톨릭의 하느님만이 진정한 신이다. 그러니 아즈텍 신들을 버리고, 가톨릭을 믿으라!”며 개종을 요구했다.<자료11> 아즈텍의 신전은 교회로 개조되었고, 그들의 신상은 예수와 성모마리아 상으로 대체되었다. 아즈텍인들은 반발하였지만 이교 심문소를 설치하고 추종자들을 화형시키는 등의 강력한 제재 끝에 모두 개종하고 만다. 이러한 노력으로 아즈텍 문명이 있었던 현재 멕시코는 인구의 94%가 그들의 신을 믿는 나라가 되었다.
각자의 유일신 사상을 확립한 후에, 이제는 서로 유일성을 주장했다. 서로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걸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 말기부터 근대에 걸쳐 일어났던 전쟁은 대부분 종교와 연관된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레판토 해전, 80년 전쟁(네덜란드 독립 전쟁, 칼레 해전, 30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 등이 대표적이다.<자료12> 처음에는 이교(異敎)간 싸움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같은 신 아래 구교와 신교의 싸움으로 번진 양상을 볼 수 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은 같은 신을 믿더라도 교리 해석, 종교 의식의 차이에 따라 교파가 갈라지게 되었고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교파’인 이단(異端)이라는 개념까지 탄생시킨다. 예를 들면 이슬람 수니파는 시아파를 이단이라 하며, 기독교는 예수를 믿지 않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경우 이단이라고 하는 식이다.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단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서 시대나 상황에 따라 기준이 변했다. 초대교회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이단이라 했지만,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단으로 불리며 복음의 원수(로마서 11장 28절)가 되었다. 예수 역시 성령모독죄를 범했다는 이단이었으나 정작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定罪)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오히려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서방 기독교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동방 기독교 지역을 약탈하고 교인들을 학살한 이후 동서(東西) 교회가 분열되어, 서로 이단으로 규정하고 상호파문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다시 철회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21세기에도 계속된다.
지난해 3월 5일~8일,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했다. 프란치스코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 이라크 우르의 고대 유적지에서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가장 큰 신성모독’임을 강조하며, ‘한 뿌리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종교끼리 서로 싸우지 말고 공존과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자료13> 연설을 마친 후엔 이슬람의 경전 <코란> 낭송을 듣기도 했다.
가톨릭 수장의 이러한 행보는 유일신을 만들어 왔던 그들의 역사나 교리와 차이가 있었다. 이를 의식한 프란치스코는 이라크 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 “교황은 용감한게 아니라 무모하다.”,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다.”, “이단과 한 발 차이다.”라고 비판하는 자들이 있다며, 이는 자신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한 교리와 일치한다고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그가 말한 교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으로 이슬람과 유대교를 비롯한 비그리스도교를 포용하겠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1962년~65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 대표 2,800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회의였다. 많은 사제들이 동의한 교리라고 하니, 그동안 유일신 교리를 공들여 편집해온 성경의 저자들에게는 겸연쩍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