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탐구<1> 종교가 가르친 것들… 물과 불이 가진 의미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 기획을 시작하며…
종교의 어원을 보면, 한자어(宗敎)로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라틴어(religio 또는 religare)로는 ‘신을 경배하여 신과 연결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종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야 하며, 절대적인 신의 존재와 연결되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지에서는 각국의 종교가 설파하는 내용을 탐구하며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고찰해 보는 ‘세계 종교 탐구’ 기획 기사를 시작한다. 제1편인 이번 호에서는 물과 불이라는 키워드로 종교의 가르침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불은 문명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여러 종교에서는 물과 불을 정화(淨化)의 의미로 가르쳐 왔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지는 이 가르침이 인간의 의식(意識)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본다. / 편집자 주
최근 물에 관한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힌두교 종교 축제인 쿰브멜라를 맞아 갠지스강에서 힌두교인들이 몸을 씻는 모습을 보도한 것이었다. <자료1>
힌두교에 따르면 쿰브멜라는 ‘항아리 축제’라는 뜻으로, 신과 악마가 영생불사의 영약인 ‘암리타’를 두고 전쟁을 벌이던 중에 항아리에 담긴 암리타가 인도 땅에 네 방울 떨어졌다고 하는데, 갠지스강을 비롯해 암리타가 떨어진 네 지역을 순례하는 축제가 바로 쿰브멜라다.
힌두교 경전인 ‘베다’에 의하면 쿰브멜라는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인 행사인데, 새삼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하루 확진자가 16만 명씩 늘어나는 인도에서 마스크도 없이 갠지스강에서 밀접 접촉하는 힌두교인들을 향해 전 세계 언론이 우려를 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가 계속되어 매일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자 보름 후에는 인도의 하루 확진자가 35만 명으로 폭증해 세계 최고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망자가 속출해 시신을 마을 공터에 쌓아 놓고 불 지르거나 아예 병원 바닥이나 차량, 건물 밖에 방치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인도로 가는 여객기 운항을 금지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급박한 위기를 타개하려면 모임을 통제해야 한다고 인도 정부에 촉구한 것은 그만큼 감염 사태가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지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노 마스크의 힌두교인들이 갠지스강에 빽빽하게 모여 서로 몸이 닿은 채로 강물을 뿌리며 목욕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전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강물’에서 몸을 씻는 그들은 무엇을 갈망하는 것일까? 힌두교에서는 쿰브멜라 기간에 신성한 강물에서 목욕하는 것이 현세의 죄와 괴로움을 씻을 수 있는 기회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힌두교 특유의 윤회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생명이 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낳고 죽기를 반복하는데 이번 생에서 인간으로 살았어도 다음 생에서 동물로 태어날 수 있으며, 이번 생에서 높은 계급으로 살았더라도 다음 생에서 낮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며,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신성한 강물로 죄를 씻는 정화 의식이라는 것이다.
힌두교가 가르친 윤회 사상과 신성한 강물에 대한 믿음은 카스트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에 얽매인 사회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을 낳았다. 이 때문에 바이러스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신성한 강으로 신도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쿰브멜라에 참여한 신도들은 최신 스마트폰으로 갠지스강을 촬영하고, 쿰브멜라 주최 측은 페이스북·트위터 등 각종 SNS를 통해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수천 년 전에 시작된 쿰브멜라가 계속되는 것은 그만큼 종교의 가르침이 가진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이 정화의 힘을 가졌다고 가르치는 것은 힌두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우두(아랍어: الوضوء wuḍū)라고 불리는 의식이 있는데,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하는 간단한 세정식이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청결하지 않은 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예배 전에 몸을 정화시키기 위해 가지는 의례이며, 우두를 행할 때는
‘알라의 이름으로’라고 말한 후에 정해진 순서와 횟수에 따라 얼굴과 손, 팔꿈치, 발까지 씻게 된다. <자료2> 또한 로마가톨릭교에서도 미사 전에 신도들이 성당에 들어갈 때 그릇에 담긴 물에 손가락을 찍어 얼굴에 십자를 긋는 의식이 있다. <자료3> 이 의식에서 사용되는 물은 성수라고 하며 가톨릭 사제가 축성한 물이라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정화 의식은 코로나가 창궐하는 팬데믹 속에서 청결을 강조하는 사회적 추세와 부합해 계속 이어지는 의식도 있지만 반대로 바이러스 감염 우려 때문에 중단하게 된 의식도 있다.
종교에서 물이 정화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불도 세상의 악을 소멸하는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불을 숭배한다고 하여 ‘배화교(拜火敎)’라고도 불리는 조로아스터교는 불이 선한 신의 상징으로서 악한 세력을 소멸해 준다고 가르치며, 이는 유대교와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료4>
현재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은 상당수가 인도 뭄바이에 있으며, 하루에 다섯 번씩 불(촛불이나 기름 램프, 별이나 태양) 앞에서 기도문을 암송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에 항상 불이 꺼지지 않게 각별히 정성을 다해 관리한다. 그러나 역사상 ‘정화하는 불’이 가장 맹렬하게 타올랐던 곳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곳이 아니라 기독교가 뿌리내린 유럽이라고 할 수 있다.
13세기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가톨릭교회는 종교재판에서 이단 판정을 받거나 마녀로 낙인 찍힌 자는 그 악을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활활 타는 장작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을 내렸던 것이다. 16세기 등장한 개신교 또한 마녀사냥과 화형에 뛰어들면서 유럽 전역에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태우고 뼈를 녹아내리게 만드는 화형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갔다.
특히 종교재판으로 악명 높았던 스페인이 16세기 말에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면서 ‘정화의 불’ 또한 아메리카 대륙으로 번져 갔는데, 가톨릭 본토에서와 마찬가지로 악을 정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원주민들을 화형에 처했던 것이다. <자료5>
가톨릭 침략자들이 원주민을 약탈할 때 어머니 품 안에 있는 어린이를 낚아채서 강물에 집어 던지고는 “악마의 자식들아! 펄펄 끓어라!” 하고 말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들이 원주민을 단순한 피지배자로 본 것이 아니라 악마의 자식, 즉 종교적으로 대항하고 정화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톨릭 침략자들은 원주민의 영혼까지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칼과 총, 폭력을 앞세운 강제 개종을 밀고 나갔고, 원주민 사제와 귀족들은 수천 년간 이어진 자신의 종교를 지키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그들은 산 채로 활활 타는 불길 속에 던져지고 말았다.
원주민의 종교는 고귀한 깃털이 달린 뱀(켓살코아틀)을 섬기는 종교였고 가톨릭 침략자들이 보기에 이는 끔찍한 악마 숭배에 지나지 않았다. <자료6> 이러한 악을 정화하기 위해 가톨릭 침략자들은 원주민을 가차 없이 화형대에 세웠던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화형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극악한 살인 방법 중에 하나지만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화형을 당하는 사람은 불로써 그의 죄가 정화되며 그로 인해 세상의 악도 정화되는 고귀한 방법이었다.
침략자들은 정화의 불길로 전통 종교를 남김없이 말살하며 아메리카 대륙의 남쪽부터 정복해 나갔고, 그로부터 50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남아메리카 대륙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톨릭 신도를 가지게 된 것은 그 정화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화의 불길을 퍼뜨린 종교와 그 불길에 사라진 종교를 비교할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폴 발타(소르본 누벨 파리 3대학 현대동양학연구소의 명예소장을 지낸 역사학자)가 저술한 “세계의 종교 이야기”를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피로써 제사를 지냈던 희생제의와 예수의 피를 마신다는 가톨릭의 미사가 ‘봉헌과 희생’이라는 제목 아래 같은 페이지에서 소개되고 있다. 또한 세르주 그뤼진스키(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책임과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안데스 연구 센터의 부소장직을 역임한 고문서학자)가 저술한 “아스텍 제국 그 영광과 몰락”을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식인제의는 또 하나의 성찬식이라 소개하고 있다. 예수의 살을 먹는다는 가톨릭의 미사가 ‘성찬식’이라고 불리는 것을 감안할 때 흥미로운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자료7>
종교가 가르쳐 준 ‘정화하는 불’이라는 의미와 인식은 중세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화형에 관한 뉴스가 사진과 함께 해외 토픽에 보도된 일이 있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람 인형으로 만들어 불에 태움으로써 화형식을 치렀다는 소식이었다. <자료8>
베네수엘라는 해마다 가톨릭의 부활절을 기념하는 행사로 화형식을 열고 있는데, 국민의 85% 이상이 가톨릭을 신봉하는 베네수엘라에서 화형식은 여전히 진행 중인 정화 의식인 셈이다. 백신과 예방의학으로 바이러스에 맞서는 시대에 코로나를 종식시키겠다며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것은 여전히 종교의 가르침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종교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 가르침은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재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 번 기획기사에서는 다른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수천 년 동안 진흙 땅 아래 잠들어 있었던 종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쿰브멜라’ 란?
□ 쿰브멜라(kumbh mela)란?
쿰브멜라는 힌두교인들의 가장 큰 종교 축제로, 성스러운 강가를 찾아 목욕을 하고 죄를 씻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힌두교인에게 쿰브멜라는 속죄와 축복의 기회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하게 생각한다. 정화 의식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쿰브멜라는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이미 기본 형태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 쿰브멜라의 뜻과 유래
‘쿰바’(kumbha)는 ‘항아리’, ‘멜라’(mela)는 ‘축제’라는 뜻으로 쿰브 멜라는 ‘항아리 축제’라는 의미다. 왜 항아리 축제라고 하는 것일까?
힌두교에 따르면, 신과 악마들이 불사의 영약인 ‘암리타’가 들어 있는 항아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던 중 항아리에서 암리타 4방울이 떨어졌고 그 네 곳을 성지로 순례하는 것이다.
□ 쿰브멜라 때 하는 것?
해가 뜨기 시작하면 먼저 나가 사두(Naga Sadhu: 나체 수행자)들이 강물에 들어가고 그 뒤에 다양한 종파의 수행자들이 뒤따른다. 이 다음에야 일반 신자들이 입수할 수 있다. 이때, 성스러운 강물을 병에 담아 가는 사람들도 많다. 목욕 의식이 끝나면 신자들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신들을 찬미하고 강가에서 펼쳐지는 여러 공연을 관람한다.
□ 암리타가 떨어진 네 지역은 어디?
불사의 영약 암리타가 떨어졌다고 전해지는 지역과 그 지역에 흐르는 강은 다음과 같다.
하리드와르 – 갠지스
우자인 – 시프라
나시크 – 고다바리
알라하바드 – 갠지스, 야무나, 사라스바티
□ 쿰브멜라는 언제?
개최지 네 곳에서 각각 12년마다 돌아가며 열린다.
인도 전체로 보면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것과 같고 한번 개최되면 7주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