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매캐릭
해리성 인격장애라는 정신 질환이 있다. 해리(解離)는 의식의 단절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잊고 다중 인격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작가 공지영은 이중 삼중으로 위선의 가면을 쓴 악인의 이름을 ‘해리’로 지었다. 소설 속 해리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며 숨 쉬듯 거짓말하는 인물이다. 이런 다중 인격은 현실에서도 활보하고 있다.
아동 성추행에 ‘무관용 원칙’으로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추기경이 있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이자 미국 사회의 존경 받는 거물이었다. 매캐릭 추기경. 그의 또 다른 자아는 10대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수십 년간 사제들을 침대로 불러들인 파렴치한이었다. 매캐릭은 당초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자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그런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폭로로 사제 성추행 시기와 장소, 피해자들에게 입막음으로 준 합의금까지 밝혀지자 돌연 다른 사람이 된 듯 추기경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나섰다. 성추행 은폐 사제를 끝까지 두둔하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갑자기 사죄로 돌변한 것을 보면 다중 인격은 그 집단의 특징이자 보호막일지 모른다.
연기도 지나치면 관객을 피로하게 한다. 거룩함을 연기하는 자들의 추악한 범죄는 이제 식상한 뉴스일 뿐이다. 한 언론은 미국만 해도 성추행 사제가 6,000명이 넘는다며 가톨릭 성범죄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고 썼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는 범죄는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가톨릭의 일상이 되었다. 소설 ‘해리’에 이런 말이 있다. 악마는 하던 것을 계속 반복한다고. 이제 더 이상 감출 수도 없는 악이 언제나 멈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