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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 땅! 하면 뛰는 거예요. 정말 신나게 이제 뛰는 거예요. ”

BY.천부교


[사진 전시실] 전국전도관 체육대회에 참석하신 하나님 모습. (촬영일: 1957. 7. 16.) 밀양전도관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을 때, 집회 기간(1957. 7. 11.~17.)에 밀양 삼문동 공설운동장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전국전도관 체육대회가 있었다.

◇ 밀양전도관 집회에서 알게 된 기쁨


권기식 권사/서마산교회

1957년 제 나이 스무 살 때, 밀양전도관에서 7일간 부흥집회가 있었습니다. 저희 남지전도관 식구들 중 50여 명이 버스를 대절하여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는 농촌이 어려울 때여서 저는 1주일 먹을 미숫가루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 모인 식구들은 거의 며칠씩 밤을 새우며 예배를 보는데도 피곤하거나 배고픈 것을 몰랐습니다. 더구나 웬 기쁨인지 즐거움인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이 넘쳤습니다. 철야 집회가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병자들아, 일어나 뛰라!” 외치시니 걷지 못하던 환자는 물론 수많은 환자들이 일어나 기뻐서 뛰며 병이 나았다고 증거하기도 하였습니다.

저 또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너희 배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라는 말씀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해지며 몸이 공중으로 둥둥 뜨는 것같이 상쾌하였습니다. 받은 자밖에는 알 길이 없다는 말씀처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 밀양에서 열린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박용한 승사/기장신앙촌

1957년 7월 11일부터 한 주일간 밀양전도관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을 때 집회 기간 중에 공설운동장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체육대회를 며칠 앞두고 날씨가 흐려 걱정을 했는데, 개회식 전날부터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회에 참석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우리 식구들은 우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밀양에 도착하여 운동장에 들어서시자마자 쏟아지던 비는 딱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손뼉 치며 환호했습니다. 운동장에는 모래가 많아 빗물이 곧 스며들어 체육대회와 집회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 밀양 양효리전도관에서 얻은 은혜와 확신


김덕웅 권사/기장신앙촌

1957년 제가 열여섯 살 무렵에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양효리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전도사님은 서울대학교에 다니다가, 박 장로님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이 귀한 체험을 다른 이에게 전하기 위해 전도사로 나오게 되었다는 분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전도사님에게 공부를 배우며 전도관에 제법 재미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전도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동네 어른들은 전도관 금지령을 내리고 갖가지 험담을 하며 반대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견디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 이제는 그만둬야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수요일 예배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 따라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칠흑같이 캄캄해서 무서움은 더욱 심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서고 몸에는 식은땀이 배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만 가면 이렇게 다니는 것도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산길을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코에서 진한 향취가 진동하면서 등허리가 후끈해지더니 이상하게도 그렇게 무섭던 감정이 싹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평온함과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계속해서 맡아지는 향취가 혹시 길가에 핀 꽃향기가 아닌가 하여 맡아 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제단에 도착하여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후끈후끈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시에 향취가 진동하였고,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나 퇴비를 치울 때도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다음 일요일 다른 교인들에게 제가 받은 체험을 이야기하였더니 그게 바로 향취와 불성신의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며,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은혜를 직접 체험한 저는 너무나 기뻐서 이를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열심히 증거하였고 주위 사람의 핍박에도 아랑곳없이 전도관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 밀양전도관에 청년들이 많이 전도되어 밀양에서 전국전도관 체육대회도 열려


박숙자 권사/밀양교회

1957년 제가 17살 때였습니다. 당시 박태선 장로님께서 2주에 한 번 화요일마다 밀양으로 오셔서 집회를 열어주셨는데 집회가 열릴 때면 밀양 시내에서 북을 치며 집회 소식을 알렸습니다. 점점 밀양 식구들이 늘어나서 양효리, 춘화리, 청도, 풍각 등 지관도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 아주머니와 교장 선생님 사모님도 박 장로님을 모실 예배실을 삼문동에 마련하였습니다. 길게 나무로 지은 집이었는데 바로 옆에는 공설운동장이 있었고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도 열렸습니다. 체육대회 당시 밀양전도관에는 청년들이 굉장히 많아 달리기, 공차기 등에 참여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주방에서 흰 반죽에 팥을 넣어 빵을 만들어 체육대회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습니다.

저도 주방에서 빵을 만들다가 잠깐씩 내다보며 경기 구경을 했습니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박 장로님을 모시고 선수들과 전도관 식구들이 함께 사진 촬영도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체육대회를 통해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셔


정순실 권사/안양교회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에서 어떤 선수가 높이뛰기를 했는데 기록이 평소만큼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시 한번 뛰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속상했던 그 선수는 끝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활짝 웃으시면서 그 선수에게
“그렇게 뭐든 이기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것이다”라고 하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원래 지기 싫어하던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모든 일에 더 적극적이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주택을 지을 때도 새벽예배를 마치고 벽돌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안수를 해 주셨는데, 친구들끼리 “너는 오늘 안수 몇 번 받았니?”하고 서로 경쟁을 하기도 했고, 공장에서 일을 할 때도 공장끼리 경쟁에서 꼭 이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은 어떤 일이든 잘 하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이 참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 체육대회를 통해 최선을 다해 끝까지 따라가는 게 중요함을 알려주셔


김영정 퇴임 교역자

제3회 전국 전도관 체육 대회 때 하나님께서 릴레이 주자로 뛰셔서 1등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 온 선수의 손을 들어주시면서 1등이라며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된다며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밀양전도관 개관식 대성황, 우승기 진해군 획득, 밀양 체육제전서

1957년 7월 11일부터 17일까지 열린 바있는 밀양 집회는 박태선 장로 인도하에 가물어 메마른 뭇 심령들을 불러 일으켜 개관식을 성대히 거행했으며 한편 밀양전도관에서는 지난 16일 전국전도관 대항체육대회가 열리어 1등 진해군, 2등 수원군이 각자 우수한 성적을 획득함으로써 전도관 체육제전의 위용을 다시 한번 남부지방에서 과시하였다.

일부 기성교회 목사들의 핍박 가운데 획기적 부흥을 가져온 밀양전도관에서는 대부흥집회를 열어 성도들의 신앙을 북돋우는 한편 수많은 새로운 신자들의 혁신적 부흥의 불길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그리고 16일에 개최된 전국전도관 대항체육대회는 내빈 및 각 전도관 선수들이 모인 가운데 개막되었다. 이날따라 이곳 날씨는 3주간을 돌파하여 계속되던 장마를 깨트리고 청명 그대로 ‘플레이’에 양호한 ‘컨디션’의 은사를 베풀었다.

농구게임을 비롯해서 수종의 육상경기등 각종 시합에서 선수들은 신앙체험을 통한 정신력과 기풍을 여실히 발휘하였다. 농구게임 전적은 1등 마산군, 2등이 청주군, 3등이 서울군, 4등이 밀양군의 순위로 되어있다. (1957년 7월 22일 자 신앙신보에 실린 기사 전문)

발행일 : 2020-11-29 발행호수 : 2589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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